Trekking

[아침가리골] 심설속 월둔고개 넘기 ②

저산너머. 2014. 2. 19. 11:05

 

 

 

 

 

 

현리~갈터~아침가리골~월둔고개~월둔골~원당~내린천

 

침가리골은 보통 협곡 지형을 이룬 하단부만을 트레킹 대상으로 하지만, 발원지인 구룡덕봉에서 최하단 방태천

합수부까지 장장 16km에 이르는 긴 계곡이다.

본류 좌우로 3~4km 가량의 지류들이 부챗살처럼 흘러내리는데, 수계 기준으론 동설악 둔전골의 3배가 넘고, 내설악

백담계곡에 육박하는 규모.

안쪽 조경동에 서너가구의 민가만 있을 뿐 오염원이 거의 없는 곳인데, 계곡 중류에서 상류까지 임도가 개설되어 있는

현재도 충분히 좋지만, 만약 임도마저 없었다면 남한땅에선 계곡 발원지부터 끝까지 오염원 없이 살아남은 유일한 대규모

계곡이었을 것이다.

 

풍광상 하이라이트인 하단부 협곡지대에 비해 조경동 이후의 중상단부는 다소 수수한 편이라 다른 계절엔 좀 밋밋할

수도 있지만, 겨울엔 원시적인 수림을 배경으로 환상적인 설경을 이룰 것 같아 심설기에 꼭 한번 찾고 싶었던 곳이다.

 

 

 

 

침가리골 한복판.

산정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 뿐, 한 점 소리 없이 적막했던 아침가리골의 밤.

마치 태초의 고요함 그대로인 듯했다.

'사악사악' 텐트 위로 내려앉는 눈 소리마저 적막의 깊이를 더해줄 뿐...

 

전날 아침가리골 하단부를 러셀해 오르느라 옷, 양말, 등산화, 장갑 등등 온몸이 완전 다 젖었었다.

저녁을 먹고나서 반은 체온으로 반은 가스로 말리다보니 이거 도대체 뭔 짓하고 있는건지 참 가관이라는 생각이...ㅎㅎ

그거 말리느라 피같은 가스 한통을 거의 다 소비했다.

 

새벽에 늠늠 추워서 침낭을 젖히고 살펴보니 헐~~ 모기장이 반쯤 열려있다.

저녁 하면서 환기를 위해 열어두었던.....ㅜㅜ

에어매트리스에선 자꾸 바람이 샌다.

이젠 그러려니 하고 중간에 바람 한번 넣어주면 그걸로 끝이지만......

겨울산.. 원래 추운것 아닌가?ㅋ

 

 

 

 

모기장 샷.

 

 

아침에 눈을 뜨니 날씨가 화창하게 개어 있었다.

텐트 밖으로 빼꼼히 고개를 내미니 파란 하늘아래 투명하게 빛나는 순백의 계곡이 눈앞에...

 

이 부근의 적설이 이미 엉덩이 깊이라서 전날밤엔 도저히 월둔고개를 넘을 엄두가 나지 않았었는데, 파란

하늘이 드러나니 다시 월둔고개로 가자는 생각이 고개를 쳐든다.

 

운탄고도에서 종주를 포기한 채 뒤돌아서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땐 식량도 연료도 바닥이라 눈물을 머금고 후퇴했지만, 지금은 식량도 충분치 않은가.

연료야 부족하면 전통적인 방식을 이용하면 되고, 정 급하면 음식이야 뭐든 먹고 물마시고 뱃속에 들어가면

결국 그게 그거 아닌가.

또 결정적으로.. 조경동의 그 개쉐이들이 넘 두려워 다시 대치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ㅋㅋㅋ

 

설사 러셀해 오르는데 하루가 더 걸리더라도 월둔고개를 넘자.

가다가 정 안되면 그때 빽해도 늦지 않고...

 

그래... 오늘은 무조건 Go~! Go~~!!

 

 

 

생명수.

 

 

텐트 안에서 배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문득 차소리가 들리면서 빨간색 지프 한대가 눈위를 미끄러지듯 내려간다.

헉~ 이런 폭설상황에 차량이라니...

도대체 뭐지?

계곡 중간에 무슨 시설물이라도 들어섰나?

아니면 혹시 조경동약수까지만 다녀오는걸까?

 

텐트를 철거한 후 임도로 나서 그 차량이 지난 바퀴자국을 살펴보니 광폭타이어에 체인자국이 뚜렷하다.

"야호~~!!"

이 정도 타이어를 부착한 차량이라면 월둔고개를 넘어온 오프로드 차량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쾌재를..

조경동에서 이곳까지 진행해 오면서 설마 이 폭설상황에 차량이 다니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그렇다면 이제 거리가 문제일뿐, 월둔고개를 넘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었던 적설 문제는 완전히 해결된

거나 다름없다.

좀전까지만해도 월둔고개를 향한, 나름 비장했던 결심이 오프로더 덕분에 좀 거시기해졌다.ㅎㅎ 

월둔고개까지는 하루가 더 소요되거나 아니면 중간에 후퇴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최대의 걸림돌이 사라져버려 여유로운 마음으로 월둔고개를 향해 임도를 따라 천천히 걸어오른다.

 

 

아침가리골엔 수해로 인해 끊긴 다리가 많다.

 

어딜가나 수북한 눈.

투명한 하늘아래 백설이 눈을 제대로 뜨기가 힘들 정도로 눈부시게 빛난다.

 

 

 

 

눈덮힌 침엽수림을 바라보면서 문득 타이가의 침엽수림 한가운데 서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 그런지 아침가리골 중상류엔 전나무숲이 울창했다.

 

 

 

 

 

갈전곡봉 방향으로 나있는 등산로.

경방기간 이외엔 등산이 가능하단건가?

 

 

멧돼지인지 고라니인지 큰 짐승이 지나간지 오래되지 않은 발자국.

 

 

 

 

이제 홍천군 광원리(원당)까지 9km 남았다.

 

 

아침에 오프로더가 지나간 덕분에 결정적인 도움이 되긴 했지만, 차량 바퀴자국을 따라 걷는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좁은 바퀴자국 때문에 몸이 연신 뒤뚱뒤뚱~~ 더구나 눈 아래는 임도 전구간이 빙판...

 

 

 

길은 대체적으로 완만하고 직선에 가깝게 뻗어있어 좋지만, 참으로 멀고도 멀다.

 

 

별다른 지형지물이 없는 아침가리골 중상류에서 눈에 띄는 암사면 절개지.

이곳 직전에 작은 사태골이 하나 있었다.

 

 

오래된 안내판.

 

 

구룡덕봉에서 발원되는 아침가리골의 원류.

이곳을 지나면서 임도가 크게 휘돌기 시작하고 길이 다소 가팔라진다.

 

 

원당 6km.

 

 

구름에 휩싸인 갈전곡봉 정상부.

아래쪽이 조경동과 더불어 삼둔 사가리의 하나인 명지거리(명지가리)이다.

명지거리 부근에 적어도 조경동약수 안내판 정도는 있을 줄 알았는데, 아예 없는건지 눈속에 묻힌건지 보지 못했다.

 

 

임도가 크게 휘돌기를 두세차례.

이제 거의 다 올라온 것 같다.

 

 

왼편으로 월둔고개 정상이 보인다.

오른편은 구룡덕봉 정상으로 향하는 임도.

트레킹 출발전엔 구룡덕봉에 올라 설경을 감상할 계획도 있었는데...ㅋ

 

 

길고 긴 트레킹후에 드디어 월둔고개 정상.

 

심설기에 이 코스는 오프로더들에겐 파라다이스와도 같지 않을까.

암튼 이곳까지 편하고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게 아침에 차량을 운행해 준 그 빨강색 오프로더에게 무한한 감사를.....

(이번 산행의 일등 공신은 오프로더이고, 이등공신은 조경동의 그 무서븐 개시끼들이다.ㅎㅎ)

 

 

아침가리골 자연휴식년제 안내판.

아침가리골이 자연휴식년제 구간인가?

아침가리골 초입에서 휴식년제라는 플랭카드를 언뜻 보긴 한 것 같은데, 계곡휴식년제 정도로 생각하고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았었다.

안내판엔 휴식년제 구간이 명지거리~조경교(9.1km)까지로 되어 있는데, 그러면 하단부는 트레킹이 가능한건지...

그럼 갈전곡봉 등산로 안내판은 또 뭔지...

 

 

구룡덕봉 방향.

고개를 넘어 내린천으로 향한다.

 

 

 

월둔고개를 넘어 1km 가량 내려오니 신기하게도 눈이 거의 바닥수준이다.

나중에 내린천에서 산책나온 동네 아주머니 두분과 이런저런 얘기하다 물으니 부근에서 이 곳만 유일하게 폭설이

피해갔다고 한다.

 

덕분에 월둔고개~원당까지 5km에 이르는 거리는 일사천리로 내려왔다.

완만한 내리막길인데다 아침가리골의 적설과 거리에 비하면 그야말로 식은죽 먹기 수준.ㅎㅎ

 

 

 

 

 

내린천이 눈앞이다.

내린천 건너는 다리인 월둔교.

 

 

내린천.

 

 

예상보다 하루가 더 걸린 길고 길었던 아침가리골 트레킹.

다리를 건넌 후 마지막으로 아침가리골 방향을 뒤돌아본다.

 

 

 

원당은 내면(창촌)행 시내버스가 하루 4대밖에 운행되지 않는 접근이 매우 불편한 곳이다.

막차는 이미 떠난 시각이라서 모래소유원지에서 야영하려고 했는데, 사유지라고 온통 철망을 둘러놓은 통에 내린천 따라 다시

트레킹 하듯 수km 걸어내려갔다.

내린천 내린천.. 그동안 염불 하다시피했는데, 어쨋든 이렇게라도 오게 되었다.ㅎㅎㅎ

 

아침가리골보다 저지대이고, 깊은 산중이 아닌 강변이므로 밤새 추위가 덜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어째 훨씬 더 추웠다.

새벽에 잠을 설친 후 아침에 일어나보니 침낭 발치에 넣어두었던 등산화가 꽁꽁 언채 그대로였다.

땔감이 부족해 따또빠니가 약간 미지근하긴 했어도...

 

 

 

차량 통행이 워낙 드문 곳이라 원당까지 수km를 또 어떻게 걸어가나 아득했는데, 샘터에 물뜨러온 운두령 아래

사신다는 친절한 부부의 차량을 얻어타고 내면까지 갈 수 있었다.

 

 

 

내면파출소.

지금껏 봤던 파출소중에 가장 멋진 듯...

 

 

내면터미널.

배차시간표 믿었다가 낭패 볼 뻔했다.

버젓이 터미널 앞에 운행시간 안내판이 걸려있는데도, 무시하고 운행하는 것 같다.

 

 

 

내면에서 한참을 기다친 후 홍천행 버스에 오르고, 다음날 한계령에 가기위해 두어시간을 기다려 원통행 버스를 탔다.

원당-내면(창촌)-홍천-원통.

이날은 이동에만 하루 종일 걸렸다.ㅎㅎ

 

이번 트레킹은 한계령 교통통제로 처음 계획했던 동선이 깨지고, 적설로 인한 트레킹 지연, 불편한 현지교통으로 인해

이틀은 더 소비한 셈.

 

 

 

멀리 설악 안산이 보인다.

네번째 밤은 원통 뒷산 정자에서...

 

 

 

밤새 한계령에 또다시 폭설이 내려 차량 통제란다.

어디 갈만한데 없을까 생각하다 그나마 갈만한 곳이 진부령, 마장터.. 넘 뻔한 스토리에 지겨운 느낌이 들어 바다라도

볼겸 속초로 향했다.

속초에 갔더니 눈이 억수로 내려 돌아다니기도 귀찮고 해서 그냥 바로 서울로 귀경.

 

 

암튼,, 폭설 때문에 애초 계획했던 일정을 모두 소화하지도 못했고, 4일간의 장기 일정에 추위때문에 고생을 했지만,

아침가리골 순백의 심설속에서 뒹굴던 기억은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이로써 삼둔 사가리중 달둔과 적가리만 제외하곤 모두 돌아보기도 한 셈.

 

 

 

 

 

남한 땅엔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3~4일쯤 걸리는 오지 트레킹 코스가 없는 점이 아쉽다.

트레킹 시작하면 사나흘동안 인공적인 시설물은 물론, 사람 한명 구경하기 힘든 원시적인 풍광을 간직한 그런 곳 말이다.

 

어서 통일이 되서 살아 생전에 개마고원도 트레킹하고, 삼수갑산도 구경하고, 백두산, 관모봉 등등 해발 2천m가 넘는

북녘의 산에도 가보고 싶다.

갈만한 곳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때문인지 요즘 들어 더더욱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