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2

[Poem] 정호승-산을 오르며

정 호 승 내려가자 이제 산은 내려가기를 위해서 있다 내려가자 다시는 끝까지 오르지 말자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내려가는 길밖에 없다 춘란도 피고 나면 지고 두견도 낙엽이 지면 그뿐 삭발할 필요는 없다 산은 내려가기 위해서 있다 내려가자 다시는 발자국을 남기지 말자 내려가는 것이 진정 다시 올라오는 일일지라도 내려가자 눈물로 발자국을 지우자 눈도 내렸다가 그치고 강물도 얼었다가 풀리면 그뿐 내려가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함께 올라왔다 내려가자 사람은 산을 내려갈 때가 가장 아름답다 산을 내려갈 때를 아는 사람이 가장 아름답다 자유로워지기 위하여 강요당하지 말고 해방되기 위하여 속박당하지 말고 내려가자 북한산에도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

&.. 2009.06.17

[Poem] 정호승-강변역에서

정호승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도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 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 2009.05.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