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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신경림-목계장터

신경림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네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 나루에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가을볕도 서러운 방물장수 되라네 산은 날더러 들꽃이 되라 하고 강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산서리 맵차거든 풀속에 얼굴 묻고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붙으라네 민물 새우 끓어넘는 토방 툇마루 석삼년에 한 이레쯤 천지로 변해 짐부리고 앉아 쉬는 떠돌이가 되라네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 하고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 하네

&.. 2009.05.21

[Poem] 정호승-강변역에서

정호승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날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도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 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 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 2009.05.08

[Poem] 유재영, 5월의 편지 - 꿈 같은 절망 18

유재영 자벌레처럼 푸른 목을 가누는, 아침 한때 가만가만 분홍빛 품사로 떠 가는 은유여 풀밭을 스쳐 온 어린 바람의 겨드랑이에서 나는 오이풀 냄새와 뜨락 가득 한없이 퍼올리는 햇빛들의 수사학 두려워라 꽃들의 저 눈부신 기약 너머 문득, 초록의 이름으로 다가오는 사람 하나 오늘 내가 쓰는 긴 편지의 첫머리는 비워 두기로 한다

&.. 2009.05.01

[Poem] 진교준-설악산 얘기

진교준 1 나는 산이 좋더라. 파란 하늘을 통째로 호흡하는 나는 산이 좋더라. 멀리 동해가 보이는 설 · 설악 · 설악산이 좋더라. 2 산에는 물, 나무, 돌 ······ 아무런 誤解도 法律도 없어 네 발로 뛸 수도 있는 원상 그대로의 自由가 있다. 고래 고래 고함을 쳤다. 나는 고래 고래 고함을 치러 여기까지 온 건지도 모른다. 3 산에는 파아란 하늘과 사이에 아무런 障碍도 없고 멀리 東海가 바라 뵈는 곳 산과 하늘이 融合하는 틈에 끼어 서면 無限大처럼 가을 하늘처럼 마구 부풀어 질 수도 있는 것을 ······ 정말 160cm라는 건 아무 것도 아닐 수도 있는 것을 ······ 4 도토리를 까 먹으며 설악산 오솔길을 다리쉼 하느라면 내게 한껏 남는 건 머루 다래를 싫건 먹고픈 素朴한 慾望일 수도 있는 ..

&.. 2009.04.30

여행ing

현재 광주역.. 새벽에 열차편으로 광주에 도착했다. 이틀정도 일정으로 담양과 보성을 둘러볼 예정이다. 이왕 내려온거 며칠 더 있으면 좋겠는데, 금~토요일 비소식도 있고, 일요일에 약속이 있어서.. 새벽 첫차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먼저 소쇄원으로 향했다가 관방제림, 대나무골 테마파크 쪽으로 갈 예정이다. 그리고나서 보성으로... 오랜 봄가뭄끝에 단비가 내려 풍경도 깨끗할 터이고, 오늘은 22일이니 담양 장날이겠지? 5년전 이맘때쯤 소쇄원에 왔던 기억이 난다. 탱자꽃이 막 지던 계절이었던 기억이 나는데, 아마 지금보다는 한주쯤 이른 시기였던 듯... 소쇄원은 5년전 그대로였으면...

&.. 2009.04.22

[Poem] 곽재구-그리움에게

곽재구 그대에게 긴 사랑의 편지를 쓴다 전라선, 지나치는 시골역마다 겨울은 은빛 꿈으로 펄럭이고 성에가 낀 차창에 볼을 부비며 나는 오늘 아침 용접공인 동생녀석이 마련해준 때묻은 만원권 지폐 한 장을 생각했다 가슴의 뜨거움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래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건축공사장 막일을 하면서 기술학교 야간을 우등으로 졸업한 이등기사인 그놈의 자랑스런 작업복에 대해서 절망보다 강하게 그놈이 쏘아대던 카바이드 불꽃에 대해서 월말이면 그놈이 들고 오는 십만원의 월급봉투에 대해서 나는 얼마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팔년이나 몸부림친 대학을 졸업하는 마지막 겨울 그대에게 길고 긴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얼굴 한번 거리에서 마주친 적도 어깨 나란히 걸음 한번 옮긴 적 없어도 나는 절망보다 먼저 그대를..

&.. 2009.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