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재구 3

[Poem] 곽재구-그리움에게

곽재구 그대에게 긴 사랑의 편지를 쓴다 전라선, 지나치는 시골역마다 겨울은 은빛 꿈으로 펄럭이고 성에가 낀 차창에 볼을 부비며 나는 오늘 아침 용접공인 동생녀석이 마련해준 때묻은 만원권 지폐 한 장을 생각했다 가슴의 뜨거움에 대해서 나는 얼마나 오래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건축공사장 막일을 하면서 기술학교 야간을 우등으로 졸업한 이등기사인 그놈의 자랑스런 작업복에 대해서 절망보다 강하게 그놈이 쏘아대던 카바이드 불꽃에 대해서 월말이면 그놈이 들고 오는 십만원의 월급봉투에 대해서 나는 얼마난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 팔년이나 몸부림친 대학을 졸업하는 마지막 겨울 그대에게 길고 긴 사랑의 편지를 쓰고 싶었다 얼굴 한번 거리에서 마주친 적도 어깨 나란히 걸음 한번 옮긴 적 없어도 나는 절망보다 먼저 그대를..

&.. 2009.04.22

[Poem] 곽재구-첫눈 오는 날

곽재구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하늘의 별을 몇 섬이고 따올 수 있지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새들이 꾸는 겨울꿈 같은 건 신비하지도 않아 첫눈 오는 날 당산 전철역 계단 위에 서서 하늘을 바라보는 사람들 가슴속에 촛불 하나씩 켜들고 허공 속으로 지친 발걸음 옮기는 사람들 사랑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다닥다닥 뒤엉킨 이웃들의 슬픔 새로 순금빛 강물 하나 흐른다네 노래하는 마음이 깊어지면 이 세상 모든 고통의 알몸들이 사과꽃 향기를 날린다네.

&.. 2009.03.25

[Poem] 곽재구-희망을 위하여

곽재구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굳게 껴안은 두 팔을 놓지 않으리 너를 향하는 뜨거운 마음이 두터운 네 등 위에 내려앉는 겨울날의 송이눈처럼 너를 포근하게 감싸 껴안을 수 있다면 너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욱 깊어져 네 곁에 누울 수 없는 내 마음조차 더욱 편안하여 어머니의 무릎잠처럼 고요하게 나를 누일 수 있다면 그러니 결코 잠들지 않으리 두 눈을 뜨고 어둠 속을 질러오는 한세상의 슬픔을 보리 네게로 가는 마음의 길이 굽어져 오늘은 그 끝이 보이지 않더라도 네게로 가는 불빛 잃은 발걸음들이 어두워진 들판을 이리의 목소리로 울부짖을지라도 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굳게 껴안은 두 손을 풀지 않으리.

&.. 2009.0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