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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기형도-오래된 書籍

저산너머. 2009. 3. 5. 17:38

 

 

기형도

 

 

내가 살아온 것은 거의

기적적이었다.

오랫동안 나는 곰팡이 피어

나는 어둡고 축축한 세계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질서

 

속에서, 텅 빈 희망속에서

어찌 스스로의 일생을 예언할 수 있겠는가

다른 사람들은 분주히

몇몇 안되는 내용을 가지고 서로의 기능을

넘겨보며 書標 꽂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너무 쉽게 살았다고

말한다. 좀 더 두꺼운 추억이 필요하다는

 

사실, 완전을 위해서라면 두께가

문제겠는가? 나는 여러 번 장소를 옮기며 살았지만

죽음은 생각도 못했다, 나의 경력은

출생뿐이었으므로, 왜냐하면

두려움이 나의 속성이며

미래가 나의 과거이므로

나는 존재하는 것, 그러므로

용기란 얼마나 무책임한 것인가, 보라

 

나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은 모두

나를 떠나갔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누가 나를

펼쳐볼 것인가, 하지만 그 경우

그들은 거짓을 논할 자격이 없다.

거짓과 참됨은 모두 하나의 목적을

꿈꾸어야 한다,

한줄일 수도 있다.

 

나는 기적을 믿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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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에 우연히 기형도 시인에 관한 뉴스기사를 접했다.

스물아홉의 요절..
허무, 절망, 죽음, 떠돎, 침묵..
조사 하나하나까지 그냥 넘기지 못했다는 결벽증적인 성격..

그 탓일까?
이 시인의 시는 언어 하나하나 의미를 그냥 넘겨서는 안될 것만 같고,
읽다 보면 군데군데 과속방지턱처럼 배치된 한자마냥 무언가 툭툭 자꾸만 걸리는 듯한 느낌이다.
상당한 무게감, 답답함과 함께...

내가 이 시인의 시를 알게 된건 어떤 지인에 의해서다.
사실 시에 대해선 영 문외한인 내가 어찌 감히 시인과 시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겠는가.
시를 통해 대강의 분위기만 짐작할 수 있을 뿐..

이 시인이 요절한지 올해로 20주년이라고 한다.
80년대라는, 시공의 갭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한 시대를 불꽃처럼 살다간 한 시인과
그의 시가 창밖에 내리는 봄비처럼 내 가슴속에 촉촉히 젖어 드는 것은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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