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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m] 김석규-강의 변증법

저산너머. 2009. 3. 27. 13:35

 

 

김석규

 

 

강물은 강변의 풍경들을 다 데리고 가고 싶은 것일까.
제 키보다도 더 큰 그림자를 유유히 드리우고 섰는

나무며 집이며 강언덕의 작은 풀꽃 하나까지도
어서 가자고 부지런히 따라 오라고
젊은 한 때의 격정으로 물소리 철벅거리며 내달았지만
나무와 집들은 금이 간 물결 위에 제 그림자만 수습할 뿐
언제나 정지된 풍경으로 서 있고
흘러가는 것은 강물이라는 것을 스스로 알았을 때
강변의 풍경 하나 마음 깊은 곳에 퍼담아 두려 해도
바람이 헤살부리고 먹구름이 와 덮어버리고
어떤 날은 안개가 와서 한꺼번에 다 먹어치우고
온 하루 거칠게 몸을 뒤틀며 강짜도 부려 보았지만
그 사이 강물은 또 저만치 아래로 떠내려가서
강언덕 바람에 젖어 바다가 내다보이는 어느덧 하구
먼 상류의 가파르던 발걸음이 무디어지고
성화를 부리던 물소리마저 다 죽고 죽어서
스스로 몸을 낮추며 부드럽게 마음바닥까지 열고나서야
나무며 집이며 흔들리는 풀꽃 그림자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비로소 온전히 보듬을 수 있음을 알아차린
강물은 강변의 풍경들을 다 데리고 가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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