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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감자 범벅..

저산너머. 2010. 6. 26. 19:33


지난달에 이어 이번달도 설악 산행 취소.
혹시나 했던 일기예보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또 월드컵도 월드컵이고...
뭐.. 얼마전 다녀와서 그런지 지난달처럼 큰 아쉬움은 없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벌써 7월이 다가오는데, 올해들어 정기 산행을 단 한차례도 못했으니 도대체 어찌된건지...ㅡ,.-


시골에서 감자가 택배로 올라왔다.
난 햇감자를 보면 감자범벅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어릴적 이맘때쯤 하지감자를 캐면 어머니께선 항상 감자범벅을 해주시곤 했는데, 참 좋아했었던 기억이 난다.
감자 범벅은 이때가 아니면 별로 맛이 없다.
반드시 캔지 얼마 되지 않은 햇감자로 만들어야...


산행이 급취소된데다, 우루과이전은 아직 멀었고, 날은 꾸물꾸물하고...
집엔 나혼자라서 하릴없이 심심한 시간을 보내다 문득 감자범벅이나 한번 만들어봐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먼저 밀가루와 강낭콩, 소금, 설탕 등 부재료의 존재여부를 확인한다.
이 넘의 살림살이가 다 어디 박혀있는건지 한참을 찾다 겨우 찾았는데, 요즘 밀가루와 소금은 왤케 복잡한겨..
밀가루는 베이킹용, 튀김용, 수제비·칼국수용 등등...
소름은 알카리, 구이·조림용, 찌개용, 구운 소금 등등...
감자범벅 만들려다가 남산만한 베이커리 빵이 탄생하면 큰일이니 밀가루는 수제비용을 선택하고...
소금은 왠지 몸에 좋을 것 같은 알카리 소금에 방점...

중간 크기의 감자 열댓개를 물에 담가 놓는다.
오래 담가두지 않았는데도 수확한지 얼마 되지 않은 햇감자라서 그런지 껍질이 잘 벗겨진다.

감자를 4등분해서 냄비에 넣는데, 냄비가 턱도 없이 작아 집에서 막쓰는 제일 큰 냄비로 교체...
아무래도 감자가 넘 많은 듯하지만 귀찮으니 전부타 투하~~
가스렌지 불을 넣고, 감자위에 소금을 살짝 뿌리면서 살짝 긴장~~

이제 밀가루 반죽.
감자범벅이긴 하지만 사실 감자보다 쫄깃한 밀가루 씹는 맛이 더 좋으니 반죽이 생명인 듯..
예전엔 뉴슈가나 당원을 넣었던거 같기도 한데, 요즘엔 그런거 사용안하는 듯하니 설탕을 넣는다.

드디어 감자 냄비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난다.
밀가루 반죽을 먼저 올리는게 맞는지 콩먼저 올리는게 맞는지는 모르겠다.
뭐 큰 차이 있겠나...
대충 콩먼저 올리고, 밀가루로 덮어버린다.

중간 중간 냄비를 열어보는데...  
이거 아무래도 물을 너무 많이 부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다 감자탕 되면 우짜지?

좀더 기다리다 드디어 감자가 약간 탄내가 날 즈음에 개봉..
음..... 스멜~~
냄새 좋고, 때깔 좋고... 넘 맛있게 생겼다.

이제 잘익은 감자와 밀가루 반죽을 사정없이 으깨고, 비비는 일만 남았다.


♧ Before & After

BeforeAfter

근데 Before가 After 보다 나은 듯한 느낌이 드는건 왜인지..
혹 시술이 잘못된게 아닐까?ㅎ
사진 때깔은 또 왜 저렇게 누렇고...


겉모양이야 어떻든 결과물을 한입 입안에 넣어보니...
으~~~ 이럴 수가..... 내가 만들었지만, 너무 심하게 맛있는거다.
혼자 먹으려니 아깝기도 하고, 감자가 목에 걸려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미리 누구 좀 불러서 나눠먹을 걸...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감자범벅의 궁극인 듯...ㅋ
막걸리 한잔과 시원달콤한 보리똥(보리수) 차를 곁들이고, 거기에 제대로 쉬어터진 김장 김치까지 썰어서..
캬~~~ 가히 환상의 콤비..
감자범벅 한 100년만에 만들어보는것 같은데, 이토록 훌륭할 수가 있다니...

난 혹시 장금이 같이 절대 미각을 소유하고 있는건 아닐까?
또.. 아직 스스로도 모르고, 발견하지 못했을 뿐 성찬처럼 요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건지도 모르고...
이거 길을 잘못 선택한거 아닌지 하는 의혹이 든다.
지금쯤 특급호텔이나 강남의 고급 음식점에서 누구처럼 "예~~ 쉪!!!" 소리를 들으며
카리스마를 발산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흠.....

그나저나 아무리 맛있다지만.. 이 많은 범벅을 언제 다 먹나?
오늘 내일 삼시 세끼 밥상은 온통 감자범벅 될 듯....ㅡㅡ;;


근데 이거 제목을 혼자놀기의 진수 쯤으로 바꿔야 되는거 아닌지 모르겠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