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Ridge

천화대 범봉에 서다 ④ ♪

저산너머. 2009. 8. 19. 14:44


▒▒  잦은바위골 하산..


범봉 등반을 마치고, 하강을 완료한 때가 이미 오후 3시를 넘긴 시각.
잦은바위골로 하산하기에는 약간 늦은 시간이다.
설악골로 하산할 지 잦은바위골로 하산할 지 잠깐 옥신각신한다.

물론 설악골로 하산하면 시간도 훨씬 단축되고, 하산로도 상대적으로 순한 편이라서 몸이 편하긴 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이 아니면 언제 또 잦은바위골로 하산할 기회가 있을지...
더구나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다, 계곡엔 수량마저 풍부하지 않은가?
시간이 좀 늦어지더라도 이런 호기를 버리고, 안일하게 육신의 편안함을 따른다는 행위는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뭘 고민해?
곧 죽어도 잦은바위골!!

잦은바위골..
설악산에서도 험하기로 악명높은 계곡이다.
설악산 자체가 전형적인 골산인데다, 이곳 잦은바위골은 사방이 온통 험준한 암릉, 즉 좌측은 칠형제릉, 우측은
천화대, 상단은 공룡능선으로 둘러싸인 깊은 협곡을 이루고 있어 비가 올 경우 순식간에 계곡물이 불어날 수
있으므로 폭우시에는 절대 출입을 금해야 할 곳..

이곳엔 직폭형태의 100미터폭포와 50미터폭포가 버티고 있어 자일과 장비 없이는 하산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아무튼 잦은바위골로 하산 시작.
지계곡 초입, 잦은바위골 본류와 만나기 전까지는 설악 좌골처럼 급경사나 낙석구간이 없는 비교적 순한 길이다.
본류와 합수점에서 늦은 점심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밥보다도 사실 물이 급했다.
범봉을 타면서 그늘이라고는 거의 없는 땡볕에서 장시간 비오듯 땀을 쏟으며 고생을 한데다, 나중엔 물도 다 
떨어져 갈증이 극심했던 상황.

마치 사하라 사막이라도 횡단하고 난 듯 잦은바위골의 물을 끝도없이 마셔댔다.

100미터폭포 하강은 이날 최고의 하일라이트.
이런 거대한 폭포를 직접 하강해보기는 생전 처음이었고, 고도감도 상당했지만, 시원하게 쏟아지는 폭포의
물줄기를 일부 뒤집어쓰며 하강하는 기분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시원하고 짜릿한 느낌이었다.

범봉을 등반하며 겪었던 끝도 없던 갈증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듯한 느낌...
암갈색 물이끼로 뒤덮혀있어 육안으로는 미끄러워보이던 폭포옆구리 바위사면은 생각만큼 미끄럽지는 않았다.

100미터폭포를 40미터와 60미터로 나누어 하강후 나타나는 몇군데의 고비를 넘기고, 50미터폭포는 하산방향으로
폭포 왼쪽으로 우회했다.

이후 칠형제 릿지 탈출로인 지계곡과 만나면서부터는 그동안 몇차례 경험이 있었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천불동에 접어드니 이미 깜깜한 시각.
랜턴을 꺼내기 귀찮아서 그냥 어둠속을 내려오다 완전히 깜깜해질 즈음에서야 랜턴을 꺼내들었다.
 
설악동에 도착해서 야영장으로 이동해 텐트를 쳤다.
정말 오래간만에 텐트속에서의 하룻밤.
늦은 저녁을 먹으며.. 범봉 등반과 잦은바위골 100미터폭포 하강 얘기로 늦은 밤까지 얘기꽃을 피우다 자정을
넘겨서야 잠이 들었다.
자는동안 내내 난 100미터 폭포를 하강중이었다.




잦은바위골 100미터폭포 상단폭(40m) 하강.

고도감이 상당한 곳이라서 하강시 첫발을 내려서기가 쉽지 않지만, 폭포를 옆으로 둔 채, 폭포의 물줄기를 뒤집어쓰기도 하며 하강하는 맛은
정말 그 무엇에 비할 수 없을만큼 최고였다.


100미터 폭포 상단폭 전경.

100미터 폭포 하단폭(60m) 하강 대기중.

정면의 칠형제봉 암릉 뒤로 화채릉 일원에 오후 늦은 햇살이 가득하다.

칠형제 암릉.

100미터폭포 하단폭(60m)

잦은바위골 100미터 폭포. 평상시엔 수량이 미미한 곳이지만, 우리가 갔을 땐 태풍이 소멸된 구름이 지나가면서 내린 비로 인해 수량이 풍부했었다.





2009.8.15  설악산 천화대 범봉 등반 후 잦은 바위골 하산.



첫사랑.
첫키스.
첫만남.

'첫'자가 주는 인상은 얼마나 강렬하고, 오래가던가...

나의 오랜 로망이었던 범봉 첫등반.
낌은 정말 날카로왔다.

설악골을 오르내리다 가끔 범봉을 하강하는 클라이머들을 바라보면서 저곳은 오르고 싶어도 영원히 오를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저 바라만 봐도 충분히 좋은, 영원한 나의 로망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는데...


범봉과 잦은바위골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라는 틀에 한뭉치로 구겨져 들어가
겠지만..
범봉을 등반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지만..
기억이 아닌 하나의 좋은 추억으로 남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범봉과 잦은바위골에서의 추억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쉽게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이제부터 나의 로망은 무엇인지...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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