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Walking

[설악산] 백담계곡, 설경이 그려낸 수묵화

저산너머. 2011. 2. 21. 21:19

은선도와 청룡재 사이, 자라목처럼 길게 늘어진 백담계곡의 물돌이 풍경.




구비구비 이어지는 이십여리의 계곡 길.
평소엔 셔틀버스가 수시로 오가고, 등산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백담계곡이 오늘만은 폭설 속에 포근히 잠긴 채, 인적끊긴
그야말로 적막강산속 고요한 풍경이다.

은은한 달빛 아래 걷는 밤길이거나, 화려한 단풍길이 아니면 좀 지루한 감이 들 정도로 먼 길이 오늘은 한굽이 한굽이 계곡
모퉁이를 돌 때마다 그림같은 심설 속 선경들을 펼쳐내니 지루할 틈이 없다.
시간에 구애됨 없이 유유자적 발치에 수북히 쌓인 눈을 밟고, 퍼붓는 눈을 맞으며 홀로 걷는 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은빛 설국 풍경은 百潭을 白潭으로 바꾸고, 隱仙島도 銀仙島로 바꿔버린다. 
濃으로 근경을 치고, 淡으로 원경을 치고... 그 위로 아무렇게나 툭툭 거친 붓으로 점점이 하얀 눈발을 찍어댄 듯한 무채색 풍경..
한폭의 수묵화가 따로 없다.

눈은 좀처럼 그칠 줄 모르고 퍼붓는다.


원통행 직행버스 안에서 찍은 한계령 고갯길 풍경.

1m 가까운 폭설로도 부족했는지, 속초엔 새벽 4시경부터 다시 함박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진부령 경유 새벽 첫차는 폭설로 인해 끊기고(사실 첫차는 시간상 이미 놓쳤고...), 한계령 경유 첫차를 타고 원통에서 진부령행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한계령의 적설상황을 정확히 알 수 없기에 일단 운행을 해본 후 어쩌면 미시령 터널로 우회해야 될지도 모르는 상황.
직행버스엔 원통에 간다는 버스회사 직원을 빼곤 내가 유일한 승객이다.
셋이서 두런두런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며 원통까지 함께 했다.
기사님이 워낙 베테랑이신 분이라서 이미 수북히 눈이 쌓여 미끄럽고, 위험한 구절양장의 한계령 고갯길을 아주 여유있고, 부드럽게 운행하셨다.
기사님께 무한한 감사를...^^


눈 속에 잠긴 한계령 휴게소.

가리산골과 가리능선.







 




 




신선이 숨어 사는 隱仙島가 오늘은 銀仙島로 바뀐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
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
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
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
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
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퍼붓는 눈 속에 백담계곡길을 걸어오르는 내내 이 시의 구절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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