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Walking

[설악산] 화암사~신선 상봉 ①

저산너머. 2012. 3. 8. 21:21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한 한달동안의 무료하고, 답답했던 은둔생활을 끝내자마자 내 발걸음은 자연스레 설악으로 향한다.
설악, 너!!
몹시도.. 사무치게.. 그리웠단다.....ㅎㅎ


이번 산행은 올겨울 초부터 기회를 엿보다 몇차례의 폭설로 번번히 무산되었던 화암사~신선 상봉~신선봉~대간령~마산봉~
죽변봉 루트로 다녀올 예정이다.
심설기 산행치고는 산행거리가 짧지 않은데다, 30~40cm가량의 눈이 새로 내려 만만치 않겠지만 한번 떠나보는거다.

애초 선인재 1박후 신선봉과 죽변봉에서 각 1박 예정이었는데, 전날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선인재 1박은 어쩔 수 없이 포기..
등산객의 발길이 비교적 잦은 선인재까지는 어느정도 러셀이 되어있을테고, 신선대 리지 첫피치 우회사면과 리지 상단부의
암릉지대, 상봉~화암재 구간의 길지 않은 암릉지대만 무사히 통과하면 대간령~마산까지도 러셀이 되어있을테고, 마산
이후 죽변봉까지는 내리막 위주에 서서히 고도가 낮아지는 구간이므로 별다른 문제는 없을 것 같다.
정 안되면 언제든, 어느 곳에서든 미련없이 내려올 예정.....
아무튼 함 떠나보는거다.

막차를 타고, 속초 고속터미널에 도착한 후 시간이 애매해 PC방에서 시간을 보내다 5시쯤 택시를 타고 화암사로 출발했다.
택시 기사분이 산에 다니시는 분이라 코스에 대해 알고 계셨다.
신선 상봉쪽으로 올라간다하니 혼자라서 좀 걱정되는 듯한 표정이다.
올라가다 중간쯤에서 되돌아 내려올거라고 일단 안심시킨다.ㅎㅎ

화암사에서 식수를 뜰 요량이었는데, 대웅전 옆 샘이 말라있다. ㅠ
화암사 계곡으로 내려갈까하다 계단 아래편 불켜진 주방쪽으로 들어가서 식수 좀 구한다고 하니 세면장으로 보이는 곳으로
안내해주어 그곳에서 물을 받을 수 있었다.

6시경 화암사를 출발해 6시 40분쯤 선인재 정상에 도착...



선인재에서 여명을 맞는다.

선인재에서 바라본 신선 상봉과 신선봉.

선인재의 기암 뒷편, 신선봉에서 늘어진 능선 뒤로 진행할 예정인 죽변봉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운봉산도 보이고....

 

 

해를 품은 두터운 구름층이 이제 막 해를 토해내는 순간.

선인재 조망의 백미 울산암. 울산암 뒷편으로 외설악 일원의 대청과 중청, 화채가 조망된다.

널따란 헬리포트를 지나 아무런 발자국 없는 신선암 쪽으로 좀더 진행해본다. 신선암 뒤로 달마봉과 송암산도 눈에 들어온다.

미시령과 미시령 터널. 차량 통행이 적은 미시령 옛도로는 폭설 후 제설작업을 아예 포기한 상태이다.

수암과 운봉산.

최종 목적지인 죽변봉.




선인재에서 일출을 감상하며 시간을 보낸 후 상봉쪽으로 진행한다.
다행히 신선 상봉쪽으로 두세명쯤의 것으로 보이는 발자국이 눈위에 나있었다..
그런데, 그 발자국은 신선대 암릉의 자잘한 첫 바위지대가 시작되자마자 사라져 버렸다.
이제부터 저 긴 구간을 홀로 러셀하면서 올라야 한다니.....ㅠ

자잘한 바위 지대를 살짝 우회하는 구간, 작은 지릉위에 안내 표지판 하나가 보이고, 그 위쪽 암릉으로 올라서기 직전
짧지만 가파른 바위턱이 있는데, 빙폭처럼 바닥이 온통 얼음투성이인데다, 마땅히 잡을게 눈에 띄지 않아 한동안 고생한
후에야 올라설 수 있었다.



신선대 리지 첫피치.

첫우회로를 거쳐 암릉위로 오르고 나면 곧바로 사진처럼 가파른 암릉으로 이루어진 신선대 리지 첫피치가 나타난다. 
저 곳은 250m가량 암릉 오른편 사면으로 우회해 올라 능선으로 다시 복귀해야 하는데, 눈이 워낙 많이 쌓여 있는데다
꽤 가파른 사면이라 쉽지 않았다.
오래전에 내린 눈 표면은 크러스트 상태를 지나 모두 얼음으로 변해있어 미끄러운데다 자꾸만 꺼져내려 힘을 빼고,
그 위에 새로 내린 30~40cm 가량의 신설은 위쪽에서 자꾸만 쏟아져내리고....
신설 아래쪽 눈에 보이지 않는 얼음이 꺼질 때마다 마치 족쇄의 날처럼 날카롭게 발목을 파고 든다.



신선대 리지 첫피치 구간을 우회후.
사진 중앙부 하얗게 눈덮힌 가파른 바위가 신선대 리지 첫피치이다.


신선대 리지에서 이정표로 이용할 수 있는 지형지물. 저 바위를 지나면 능선이 약간 완만해지면서 조망도 좀더 시원해진다.

미시령 구도로.

이런 프레임의 사진 앞으로 지겹게 보게 될 것이다.ㅎㅎㅎ

암릉을 우회하기도 하고, 때론 넘어서기도 하는데, 암릉 북사면쪽엔 표면이 얼음으로 변해버린 오래전 내린눈에 신설과 
암릉에서 쓸려내려온 눈이 허리까지 차오르고, 깊은 곳은 가슴까지 빠진다.
눈더미 아래 숨어있는 너덜 구멍에 잘못 빠지면 온몸이 그대로 쏘옥 파묻힐 것 같아 꽤나 긴장되었다.
한차례 거꾸로 쳐박혀 빠져나오려 바둥거리기도....ㅋ
적설이 이 정도로 깊을 줄은......ㅠㅠ



대청과 중청이 좀더 시원하게 조망된다. 공룡 신선대와 범봉, 노인봉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고....

황철봉과 황철 북봉.

암릉 구간.


이제 마지막 바위구간만 남았다.
저곳만 무사히 통과하면 곧 백두대간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하고, 신선 상봉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능선을 따라 걸어오르면 
될 것 같다.
저 하얀 능선엔 도대체 눈이 얼마나 쌓여 있을까.....
와이드한 주변 조망을 감상하며 간식을 먹고난 후 다시 암릉을 향해 씩씩하게 올라갔다.

그런데..... 저 곳에서 막혀 더이상 진행할 수가 없었다.
바위에 덮힌 눈의 아래쪽, 즉 바위 표면은 모두 예외없이 얼음투성들인데, 미끄러워서 도대체 어느쪽으로도 오를 수가 없다.
암릉 좌측편은 바위 사면이 눈으로 뒤덮혀 있어 미끄럽고, 동굴 입구엔 눈이 워낙 수북한데다 커다란 눈덩이가 하나 걸려있고,
너덜구멍 때문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가 않고....

암릉 맨 우측에 10여미터의 크레바스가 하나 있는데, 크레바스 정상에 바위 하나가 촉스톤 비슷하게 걸쳐 있고, 크레바스의
오른쪽 암벽엔 잔설이 별로 없어 그 바위 꼭대기로 오른 뒤 촉스톤을 타고 넘을 생각으로 그 바위를 오르려 하니 등산화 바닥이
이미 눈에 젖은 상태라 석이버섯으로 뒤덮힌 바위를 오르기가 또한 만만치 않다.
오늘따라 아이젠도 아예 생략한 상황..
아이젠은 항상 휴대만 할뿐 실제 거의 쓰지 않는 편이라서...ㅡㅡ 
한동안 고생한 후에야 바위 정상에 일단 올라설 수 있었다.

그런데, 바위끝에 올라보니 이 촉스톤을 횡단할 수가 없었다.
촉스톤 표면도 역시 눈과 얼음 범벅인 상태인데다 잡고 건널만한 게 없었다.
백두대간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삼거리와 상봉이 바로 코앞인데.....ㅠ
역시 단독 산행의 한계인 것일까?

한동안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조심조심 바위를 다시 내려왔다.

 

 

단단한 얼음덩어리로 변해버린 능선의 상고대.

문제의 크레바스와 크레바스 꼭대기에 걸린 바위.

바위 정상에서 올려다본 암릉 구간.

더이상의 산행을 포기하고, 선인재를 향해 하산을 시작했다.


 

 

내려다본 능선.

날씨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나중엔 곧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로 변했다.



아쉬운 마음에 자꾸만 되돌아본다.
다시 올라가 한번 더 시도해 볼까 하는 마음이 간절했다.
내려오면서 생각해보니 너무 쉽게 포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리지 구간이라고 하지만, 그다지 험한 곳도 아니고, 저기까지 올라간 게 도대체 얼만데......ㅠㅠ


내려오다 2인용 텐트 딱 한동 칠 수 있는 기막힌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북서향이 높은 능선으로 가로막혀 있어 왠만한 큰바람은 막아줄 수 있는데다, 무엇보다 조망이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다만, 바닥이 원래 평평한 곳이 아니라서 지금처럼 심설때에만 가능한...

3시 정도밖에 되지 않은 시각이라서 원래는 선인재까지 내려가 1박할 예정이었는데, 너무 맘에 드는 곳이라 내려갈
마음이 한순간 쏘옥 들어간다.ㅎㅎㅎ
살살 눈을 다져 바닥을 고르고나니, 하룻밤 편히 묵으며 다음날 아침 눈부신 새벽 풍경을 감상할 수 있을 멋진 사이트로
변신..
 

이른 시간부터 달리 할일이 없어 잠시 음악을 듣다 따뜻달콤한 코코아 한잔 마시고는 코코아보다 더 달콤한 낮잠까지 즐겼다.
그러고 보니 간밤에 한숨도 못잤었다.....

밤이 들면서 백두대간 마루금 위론 강풍이 몰아치는 소리가 위압적으로 들렸다.
좁은 텐트 안에서 웅크리며 내내 그 소리를 듣고 있으니 그 바람은 어느새 내 속으로 들어와 내 가슴속에서 서늘하게 불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