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두타·제주-한라

[두타산] 바람 난장

저산너머. 2012. 12. 13. 00:10

 

 

 

 

 

♣ 무릉계곡~두타산성~두타산~박달령~박달골~무릉계곡

 

경방기간에다 적설도 어중간해 적당한 산행지 찾기 애매한 계절..

두타산~청옥산~고적대 정도만 어렴풋이 떠올렸을 뿐 뚜렷한 계획없이 두타산으로 향한다.

출발전 기상청 들어가보니 기온이 많이 떨어진다는 예보에 '좀 춥겠네?' 하는 정도...

 

백두대간을 넘으니 아쉽게도 영동지방엔 눈 내린 흔적이 별로 없다...

영동고속도로 대관령 부근에서 적설로 인해 정체가 꽤 있었고, 동해버스터미널 앞에서 무릉계곡행 버스

기다리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다보니 거의 막차로 무릉계곡에 들게 되었다.

무릉계 중간쯤 적당한 곳에서 밤을 보내는데, 새벽 무렵부터 능선 위쪽에서 바람소리가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더니 기온이 급강하하는 느낌이 체감되고 차츰차츰 강풍으로 변해가는 소리가 위압적이다.

오늘도 능선에서 바람과 한바탕 사투를 벌여야된다고 생각하니 긴장감 반 기대감 반반반...

자리를 정리한 후 아침 8시반쯤 두타산성을 향해 출발했다.

 

 

 

 

두타산성.

 

 

두타산성에서 바라본 고적대 방향.

 

 

고적대.

 

 

두타산성에서 무릉계곡 건너편 정면으론 바라보이는 관음암 방향의 산릉.

 

 

관음암과 관음폭포.

저곳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근사할 것 같다.

 

 

관음암 줌인.

 

 

두타청옥의 특징인 사각형으로 갈라지는 주상절리형의 수직 바위들.

바위들 대부분이 석회암지대의 뼝대와 유사한 암회색톤이나 흑빛톤에 절단면은 누런 빛을 띠고 있는데, 아마도 이

지역이 석회암 지대라서 석회암과 화강암의 중간적인 특징을 보이는 듯하다.

 

거대한 협곡을 이루고 있는 무릉계곡 양편엔 이런 바위들로 이루어진 수직 단애가 성곽 또는 띠처럼 몇단으로 도열해

있는데, 그 틈바구니로 규모가 큰 폭포들도 많이 숨어있다.

 

 

백곰바위.

 

 

산성12폭 상단부로 눈부신 아침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거북바위.

꼬리만보면 물개나 바다사자 같기도 하고...ㅎㅎㅎ

 

 

 

간간이 몰아치는 칼바람에 눈가루가 어지럽게 휘날리고 있다.

 

 

산성12폭 상단부에서 내려다본 풍경.

 

 

 

산성12폭 상단부 풍경.

 

 

계곡을 건너고, 대궐터 갈림길을 통과해 능선길로 오른다.

능선위로 윙윙거리는 위압적인 바람소리.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전장의 포화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잔뜩 긴장된다.

 

 

 

능선을 따라 무너진 산성흔적이 계속 이어지고, 근사한 아름드리 적송 군락도 출현한다.

 

 

 

 

 

 

 

 

두타산 정상부.

쉴새없이 불어대는 엄청난 강풍을 따라 눈가루가 마치 히말라야의 설연처럼 휘날리고 있었다.

 

 

앞서가던 남녀 한쌍이 능선으로 올라서는게 두려운지 청옥산까지 얼마나 걸리며 진행해도 되는지 묻는다.

후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 듯하다.

청옥산까지는 시간상 무리일 것 같다고 얘기해 주었다.

 

아... 나도 고민된다.

저 태풍처럼 불어대는 바람속으로 들어가야한다니...

갈까 말까.. 갈까 말까...

 

 

 

두타산성에서 곧바로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과 합류되는 삼거리에 도착했다.

이제까지 멀리서 간접적으로 듣고, 보기만 하던 눈보라를 온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바람과의 한바탕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雪山...

 

 

 청옥산과 고적대.

 

 

강풍을 타고 눈가루가 워낙 어지럽게 날려대다보니 청명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시계가 매우 흐리다.

정상에서 하산중인 두어팀 만났다.

이렇게 늦게 올라가느냐고 걱정되는 듯한 표정..

한 분은 오전에 두타산성에서 만났던 분인데, 어느새 하산 중이었다.

 

정상쪽으로 다가서면 다가설수록 눈보라의 강도가 점점 더 거세진다.

 

 

두타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

 

한발짝 한발짝 옮길 때마다 몸이 휘청휘청거린다.

한발로는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고, 두 발을 다 들면 순식간에 동해안까지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쌔애앵~~~~~"

이런 날씨에 왠 제트기?

의아해했더니만 바람소리다. 완전 미친.....

 

 

 

 

시원한 조망을 감상하며 쉬어가기 좋은 곳임에도 단 몇초도 머물 수가 없었다.

 

 

이건 정말 미친 바람이여...

 

 

참말로 징글맞은 바람이여...

 

 

이건 바람이 아니여...

바람, 눈보라, 추위가 한데 뒤엉킨 그야말로 난장판이여...

얼굴과 온몸을 가리지 않고 사정없이 때리고 할퀴는 난장이여...

뎀빌테면 어디 함 뎀뵤봐~~~

이건 사람을 거부하는 겨울산의 악다구니여.....

 

눈을 제대로 뜰 수 없고, 도저히 걸음을 옮길 수도 없어 동태처럼 한동안 제자리에 서있는 상황의 반복..

빽하느냐 전진하느냐.. 몇발 떼고는 고민하고, 몇발 떼고는 또다시 고민에 빠지는 가다서다의 반복..

 

 

 

카메라를 꺼내는 것 자체가 고통이지만... 난 저산을 넘어야하는 운명을 타고난 저산너머다.

그 이름 참 징그럽다.ㅎ

 

 

걸어온 능선길.

 

 

2:27 PM, 두타산 정상.

거대한 블리자드와의 치열했던 혈투에서 마침내 살아남았다.

그러나 이건 승리라고 할 수가 없다.

손끝, 발끝, 얼굴에선 감각이 느껴지지 않고, 여벌옷 몇겹으로 감싸 배낭 안쪽에 넣어둔 식수는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다.

덕분에 능선에서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었다.

아! 하얀 능선위의 타는 목마름이여.....

 

 

두타산 정상에서 바라본 청옥산.

 

 

말라붙은 두타샘.

예전엔 시커먼 습지의 웅덩이 비슷하고, 도룡뇽도 살고 좀 지저분했던 것 같은데, 말끔하게 정리되었다.

 

 

 

전의를 상실한 채 조금이라도 바람을 피해볼까 하는 생각에 일단 두타샘으로 도망갔는데, 이 넘의 바람이 거기까지 따라온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이런 악천후에 텐트도 가져오지 않은데다 식수 한모금 없으니 능선 비박은 이미 물건너갔고, 시간도 이미 꽤 늦었고...

왔던 길로 되돌아갈지 아니면 청옥산 방향으로 진행해 박달골로 하산할지 다시 고민에 빠진다.

 

 

전진이다.

배낭에서 아이젠과 스패츠를 꺼내 단단히 조여매고는 박달령으로 내달린다.

 

 

박달령에 텐트 한동이 서있다.

참으로 대단하신 분..

얼마나 부럽던지...

나도 텐트를 가져왔다면 걸음을 멈추고 이곳에서 쉬어갈 수 있을텐데...

똑똑 문을 두드려볼까하다 그냥 박달골을 향해 그대로 내리쳤다.

 

 

 

박달골로 떨어지는 지릉을 타고 내려오다 바라본 두타산.

5시 다 된 시각, 어느새 두타는 저녁 노을에 붉게 물들고 있었다.

 

지릉을 타고 내려와 박달골로 떨어지니 이미 완전히 어둠이 내렸다.

 

 

눈이 쌓인 듯 만 듯 어중간해 무척 미끄러운데다, 눈속에 숨은 돌에 아이젠 날이 닿을 때마다 몸이 뒤뚱뒤뚱 불편불편...

중간에 눈덮힌 길을 살짝 헤매기도 하고....ㅎㅎㅎ

덕분에 예상보다 하산 시간이 훨씬 더 걸렸다.

 

박달골 초입에 도착하니 8시 가까운 시각.

몇시까지 차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삼화사까지 내려가다보면 막차도 끊길 것 같다.

지난밤 머물렀던 곳으로 다시 기어든다.

 

 

본격 겨울산행 신고식 한번 호되게 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