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Walking

[설악산] 용소골 좌릉 ♬

저산너머. 2011. 9. 16. 14:49

칠형제(연)봉과 울산암.




 

설악동 ~ 토왕골 ~ 토왕폭 ~ 칠성봉
화채릉 ~ 만경대
♣ 칠선골 ~ 천불동 ~ 용소골 ~ 용소골 좌릉
♣ 건천골(양폭대피소골) ~ 천불동 ~ 설악동



1.
천불동에 길이 열리기전 설악동~대청 등로는 알려진대로 오세암을 경유하는 고전적인 루트인 마등령길이었다.
그런데, 일부는 천불동에서 신선대로 우회해 대청을 오르기도 했다는 글을 오래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이 난다.
기억이 틀리지 않고, 그 글 내용이 맞다면 아마도 천불동이 어느 정도 개척되던 비교적 후대, 즉 천불동에 이박사 다리가 놓이기 이전
까지일 것 같다.


현재는 곳곳에 안전시설이 잘 구비되어 있고, 계곡을 건너는 지점마다 다리가 놓여있어 탐방로를 따라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지만, 
천불동은 자연적인 조건으로 봤을 경우 여전히 설악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험한 계곡임에 틀림없다.
현재도 다리 두어개만 끊어져도 일반 등산객의 통행이 거의 불가능한...

당시 상황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천불동의 최난구간은 아마도 깊은 협곡과 직폭 두개가 이어지는 양폭~천당폭 구간이었을 것 같다.
천불동에서 굳이 천당폭포를 경유하는 계곡길을 따르지 않고 신선대로 우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짐작 가능한...
병풍암 부근도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연폭으로 이어지는 긴 사면을 따라 올라야하는 오련폭포 구간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물론 모두다 한참 후대인 나로선 알 수 없는 나만의 상상일 뿐이다...^^



내가 읽었던 천불동에서 신선대로 우회해 대청에 오르는 그 길은 과연 어디였을까?

설악의 주봉인 대청봉 아래 죽음의 계곡에서 발원하는 외설악의 본류인 천불동은 좌우 공룡릉과 화채릉 사이에 여러 지계곡을
거느리고 있다.
하류부터 거슬러 오르며 천불동 우측의 계곡과 능선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우선 마등령 길 이후 천불동의 첫 우지계곡인 설악골은 공룡릉의 반을 통과해야 되는 힘든 곳이므로 절대 아닐것 같고...
천화대 능선은 험한 리지 코스이니 당연히 논외이고...
잦은바위골은 설악에서도 손꼽히는 험한 계곡이니 또한 제외...
그 다음 능선인 칠형제릉도 천화대 못지 않은 험한 암릉이니 역시 논외이고...
그렇다면 남은 건 용소골과 용소골 좌릉.
예전 용소골 좌릉 산행때 언뜻 봤던 희미한 능선길이 혹시...?

용소골과 용소골 좌릉에 오르면 그 길의 실마리를 혹시라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2.
용소골 좌릉은 내겐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이다.
설악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하던 시절 첫 산악사고를 목격한 곳.
부상자 수송을 위해 양폭에 헬기까지 떴으니 작은 사고는 아니었고, 첫 경험이라서 그런지 당시엔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그후 직간접적으로 산악사고를 여러차례 더 경험하고, 나 자신도 경미하지만 사고를 경험하게 되면서 당시의 충격이 희미해지긴
했지만, 그 첫 기억이 워낙 강렬해서였는지 항상 마음 한구석에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남아 있었고, 언젠가 그 현장을 다시 꼭 찾고 
싶었다.

당시 산행 때 능선을 따라 상단부로 희미하게 길이 이어지는 것을 봤는데, 그 길이 어디까지 이어졌을지, 그 길이 혹시 신선대로 오를
수 있는 길은 아닐까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3.
범봉과 공룡릉 조망이 환상적인 신선대.
용아장성릉의 연봉들을 바라볼 수 있는 소청.
외설악과 대청봉의 풍경이 장엄한 마등령 등로와 마등봉.
외설악의 암봉숲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만경대.
공룡릉과 외설악 파노라마가 시원스레 펼쳐지는 화채릉.
거대한 주걱봉 조망이 압권인 가리봉.
그리고 소승폭, 토왕폭......

설악엔 이렇게 한장의 사진으로 설악을 상징할 수 있는 대표적인 포인트가 여러곳 있다.
그 포인트중엔 아름다운 일곱개의 연봉인 외설악 칠형제연봉을 바로 눈앞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곳도 있는데, 그곳이 바로 용소골 좌릉이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으로 서서히 낮아지는 칠형제연봉, 우측 상단으론 하얗게 빛나는 울산암, 어쩌면 천편일률적인 사진이지만 설악의
풍경에 관심깊은 사람이라면 한눈에 알아볼 바로 그 사진.

그 포인트에 오르는 것도 이번 용소골 좌릉 산행 목표의 하나이다.

용소골 좌릉의 칠형제연봉 포인트에 오르고, 좌릉을 따라 신선대 정상에 오른뒤 신선대 옛길을 따라 설악 최고의 뷰포인트인 신선대

조망대까지 진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러 과제를 안고, 어느때보다도 부담감은 상당하지만 과감히 한번 도전해 보기로 한다.


용소골 좌릉 중하단부는 거대한 암봉이 도열한 곳이라 직등이 불가능한 곳이다.
오늘 목표로 하는 곳은 제2폭포 왼편의 능선 안부에서 시작해 신선대 정상으로 이어지는 도상으론 500m 정도밖에 안되는 거리.
한계는 있겠지만, 산행 출발전 산행이 가능할지 무던히도 위성사진과 정밀지도를 살펴봤고, 화채릉에서도 수차례 관찰해보고는 한번쯤
도전해 볼만 하다는 최종 판단이 섰다.





오후 4시 40분경 용소2폭포 하단에 도착했다.
약간 늦은 시각인데다 용소골 좌릉이 어떤 곳인지는 전혀 알 수가 없어 불안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번쯤 도전해볼만한 시각이다.

그런데... 용소골 좌릉의 안부를 바라보다 문득 헉~ 좌절감이...
폭포에서 안부가 코앞이다.
너무 낮아 2~3분 정도면 넉넉히 오를 수 있을 정도의 높이...
결코 반가운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용소골 좌릉과 우릉(칠형제릉) 상단은 둘다 해발고도가 엇비슷한 신선대 암봉군으로 이어지는데, 건너편 용소골 우릉(칠형제릉)이
훨씬 더 드높이 솟아있는 걸 고려하면 용소골 좌릉은 상대적으로 훨씬 낮은 안부에서 신선대까지 그만큼 가파르게 치솟아 오르는
능선이라는 의미이므로....
'와~ 저 가파른 능선을 어떻게 오르지?'

또한가지.. 그 안부는 예전의 사고 현장은 아니었다.
그 현장은 사실 능선 아래쪽의 또다른 안부일 가능성에 좀 더 비중을 두었는데, 그곳까지 경유하면 시간상 신선대까지 오르기가 더
애매해지는데다 중간에 접근로를 무심코 지나치기도 한 터..
내일 그곳에 오른 뒤 용소골로 하산하면 위험한 용소1폭포를 다시 경유하지 않아도 되므로 오히려 좋을 것 같다.

안부까지는 길이 의외로 뚜렷했고, 폭포에서 바라보던 그대로 높지 않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비 때문에 아침에 만경대에서 출발이 지연된데다, 칠선골에서도 예상보다 시간이 걸려 신선대로 오르기엔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었다.
안부에서 작가들의 포인트인 듯한 작은 칠형제연봉 조망바위까지는 희미하게 길이 이어져 있었다.



화채릉에서 바라본 용소골 좌릉과 용소골, 칠형제릉 중상단부. 그늘에 용소골의 폭포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칠형제연봉. 조금만 일찍 왔다면 하는 아쉬움이....

 

 

능선을 오르다 올려다본 신선대 암릉.

 

 





 

 




조망바위 위쪽 능선은 예상대로 꽤 급하게 신선대를 향해 치솟고 있었고, 능선의 좌우사면도 칼날같이 가파른 능선.
산짐승길이 이따금씩 희미하게 이어질 뿐, 길은 물론 족적도 전무했다.
고지대 북사면 특유의 측백나무가 능선 그늘진 곳을 빽빽히 뒤덮고 있고, 잡목으로 지저분했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 잡목들이 없으면 진행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가파른 곳이 연속되니 불평할 수가 없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소규모 바위들이 능선에 도열해 있어 진행이 그만큼 힘들고 더디다는 점.

이런 곳에선 물리적 거리란 별다른 의미가 없게 된다.
100m 진행하는데, 30~40분 가까이씩 걸린 듯...
넘어서기 힘든 바위가 나타나면 우회할 곳을 찾는데, 좌우사면이 워낙 가파른 곳이라 그마저도 쉽지 않다.
어느 바위를 우회하다 잡았던 나무가 뚝 부러지면서 쭉 미끄러져 팔뚝은 어느새 스물댓개 쯤의 붉은 무늬가 선명한 빗살무늬 토기로...ㅠ
다행히 관절이나 뼈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단순 찰과상이니 걱정은 없다.

한참을 고생고생하다 주변 조망이 트인 비교적 규모가 큰 능선 어느 암봉위에 올라섰다.
암봉위에서 바라보다 다시 헉....
능선 상단부는 지금까지보다 더 가파르게 신선대를 향해 치솟아오르고, 암봉 아래쪽으로 눈에 띄는 작은 스크리 위쪽으로 지금까지보다
규모가 훨씬 더 큰 암봉 두어개가 능선에 버티고 서있다.
게다가 올라선 암봉은 규모가 그리 작지 않은데다 사방이 절벽같은 곳.
올라온 곳으로 다시 클라이밍 다운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고, 스크리쪽으로 하강하려 해도 보조자일을 걸만한 소나무가 서있는 아래쪽까지
접근이 용이치 않은데다 암각 비슷한 하강 포인트 하나 눈에 띄지 않고...
암봉위에서 내려다보는 천불동이 아득하게만 보였다.....


이미 6시 반이 지난 듯하다.
어느덧 뉘엇뉘엇 해가 넘어가면서 능선에도 서서히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는 시각.
이제는 더이상 미룰 수 없는, 무언가 결단을 내려야할 상황이다.

지금까지 올라온 능선상엔 하룻밤 머물 곳이 전혀 없었다.
적어도 2폭포 부근 안부까지는 내려가야 한다.
머리가 복잡해진다.
지금껏 진행해온 거리와 비교해 신선대까지는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아있는데다, 상단부까지 얼마다 더 시간이 소요될지도 예상 불가.
요행히 그 암봉들을 어렵지 않게 우회할 수 있더라도 마지막 관문인 드높이 치솟은 신선대 본릉의 암봉 직등이나 우회가 불가능할
경우는?

더이상 망설일 틈이 없다.
이젠 무조건 하산해야 한다.
암봉위에서 이리저리 내려갈 곳을 찾다 운좋게도 하강하지 않고도 내려갈 만한 곳을 간신히 찾아 곧바로 내려섰다.



능선을 헤매다 칠형제릉 너머로 우연히 범봉을 바라보던 순간, 너무도 아름다워 눈물이 날 정도였다.
당시 처한 상황이 잠시나마 잊혀질 정도로 그저 먹먹한 느낌..
그때의 어려운 상황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 모르겠지만....ㅎㅎㅎ


 

 




손에 잡히는 건 모조리 잡아채며 더이상 어두워지기 전에 가파른 능선을 부리나케 내려온다.
내려오다보니 어느새 바닥이 구분되지 않을만큼 어둑어둑해져있다.
다행히 올라온 시간에 비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일곱시 반 가까이되어 안부에 무사히 도착했던 듯...
능선 안부 너머로 어둠속에 바라보이는 허연 암봉이 왜그리 반갑던지...

그야말로 비상 비박, 본뜻 그대로의 비박 상황이다.
능선안부에 자리를 잡고보니 다행히 생각보단 좁지 않아 그럭저럭 머물만했다.
대신 바람의 통로라서 그런지 안부엔 능선보다 훨씬 더 심한 강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얼기설기 타프를 쳐 바람을 막고, 늦은 저녁을 먹으며 죽을 고생했던 하루의 산행을 돌이켜본다.
무진 고생을 다하긴 했지만, 용소골의 폭포들도 둘러봤고, 칠형제 포인트에도 오르는 등 나름의 성과도 있었으니 절반의 성공인
산행이었다고 스스로 위로해본다.



오늘 배운 중요한 교훈과 결론.

"설악의 능선은 함부로 오르지 말지어다. 특히, 외설악, 그중에서도 천불동의 능선이라면....."

"용소골 좌릉은 선선대로 우회해 대청에 오르는 천불동 옛길이 아닐 가능성이 99.9%이다."
"3개의 길고 험한 폭포를 우회해야하는 용소골도 옛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궁금증.
그러면 옛길은 어디였을까?
대상으로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설악골이었을까?
아니면 혹시 내가 읽은 글이 애초에 오류였거나 아니면 내가 무언가 착각했던 건 아니었을까?ㅋ



그런데, 도대체,, 왜... 어쩌다... 난 이곳까지 오게 된걸까? ㅠ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제 날씨의 반복.
빗방울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굵어지고, 밤새 불던 강풍도 여전했다.
좀처럼 비가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아 조망대에 잠시 오른뒤 내려와 타프를 철거하고, 배낭을 꾸리고, 남은 산행은 포기하고 안전하게 
양폭대피소로 내려선다.


 




용소골 제2폭포.

 

 

 

 

 

 

간밤에 달빛에 하얗게 빛나던 양폭의 암봉.


 


간밤에 식수를 보충하러 건천골(양폭대피소 뒷편 골짜기)로 랜턴을 비추며 잠시 내려왔다.
식수만 보충할 생각이면 물론 용소골로 내려가면 금방이지만, 예전에 왔던 건천골도 궁금했고, 다음날 오를 예정이었던 용소골 좌릉
하단부도 눈여겨 볼 생각에.....

안부 하산길 초반은 뚜렷한 편이지만, 골짜기의 돌더미들이 나타나면서 곧 희미해졌다.
어두운 숲을 한참 내려오니 드디어 하늘이 열리고, 양폭 대피소골 본류가 눈앞에 나타났다.


그때 문득 왼편으로 고개를 돌리다가 그대로 숨이 멎을 뻔했다.
바로 눈앞에 달빛에 하얗게 빛나고 있는 거대한 벽.

형언할 수 없이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에 감탄사 한마디 내뱉지 못하고,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내 머릿속마저 온통 하얘지는 느낌...
멍하니.. 시간이 정지된 듯... 그대로 멍하니 서있다 한참 후에서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달빛에 처연히 빛나는 하얀 벽이 왜 그렇게 웅장하고, 아름답게 보이던지.....ㅎ


하단 중앙에 하얀 파이프가 보이는데, 이곳이 양폭 대피소의 수원지. 건너편의 하얀 암봉은 만경대.

 

 

 

 

 

 

 

양폭 대피소 거의 다 내려올 즈음 엉켜있던 뱀 두마리.
아래쪽에 잘 보면 뱀이 한마리가 더 보인다.

인기척에 놀랐는지 서로 화들짝 떨어져서는 스틱을 휘저으며 위협해도 비켜날 생각을 안한다.
객일 뿐인 내가 이 계곡의 주인을 쫓을 순 없으니 할 수 없이 우회...ㅠ






이켜보면 만일 좀더 이른 시간에 좌릉 산행을 시작했다면, 고생은 했더라도 신선대 정상까지 오를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그렇듯 심하게 고생을 하고 나면 다신 그 곳에 얼씬도 말아야지 해놓고는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고 싶어지는...ㅎㅎ

이번 용소골 좌릉 산행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기에 더욱더 그런 기분이 든다.
설사 신선대까지 진행하지 않더라도 용소골과 용소골 좌릉 중단부를 중심으로 위험한 곳은 생략해 코스를 재구성하면 한번쯤 다시
찾아볼만 할 것 같다.





 미아..



'Sorak > Sorak_Walk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점봉산] 오색 만경대  (0) 2011.10.01
[설악산] 천불동  (4) 2011.09.16
[설악산] 용소골  (2) 2011.09.16
[설악산] 칠선골  (4) 2011.09.16
[설악산] 화채릉~만경대  (9) 2011.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