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Ridge

[설악산] 흑범길, 구름속에서..②

저산너머. 2011. 7. 26. 23:29



온통 구름속에 잠겨있다 문득 조망이 열리는 순간 바라보는 주변 풍경이 정말 환상적인 곳인데, 아쉽게도 단 한차례도 열리지 않는다.
젖은 바위, 일년여만의 리지 등반..
다들 무거운 몸으로 등반이 지연되는 와중에 흑범길의 크럭스인 40m 슬랩 칸테를 오르는 중 빗줄기가 굵어진다.

야속한 흑범길.
천둥번개만 없을 뿐, 지난해와 거의 비슷한 기상 조건이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인데다, 장시간 계속된 등반으로 지쳐가면서 다들 서서히 전의를 상실해 가던 시각..
어느새 탈출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진다.
하긴 3단 직벽도 꽤 시간이 소요되는 구간인 걸 감안하면 왕관봉까지 진행하기엔 이미 너무 늦어버린 시각이다.

이번 등반의 모토가 지난해 찾지못한 흑범의 꼬리를 찾자였는데, 아쉽지만 지난해와 동일하게 천화대 비박지로 탈출한다.


흑범길.
한국 등반사의 신화와도 같은 존재, 석주길 개척자이자 영원한 토왕폭의 사나이인 故 송준호님을 기리기 위해 요델의 후배들이 개척한 길.
그 흑범길을 개척하신 홍경의 님도 2년전 고인이 되셨다고 한다. 

산행 출발 수일전 故 송준호님의 의형제이자 설악의 많은 길을 개척하신 우리나라 산악계의 대선배 나 경봉 선배님께 두분을 위해 왕관봉에
쐐주 한잔 올리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지키지 못해 너무도 죄송한 마음 뿐이다.

다음 기회를 기약하는 수밖에...ㅠ


나이프 에지 구간을 앞두고...

나이프 에지를 앞두고, 간식을 나누며 잠시 휴식중.

흑범의 나이프 에지.

좌측이 까마득한 낭떠러지라서 내려서기 겁나는 곳.

흑범의 등짝을 향해 오르는 중.

흑범 바위.

드디어 흑범길의 크럭스인 40m 슬랩 구간에 도착해 선등자가 슬랩을 오르고 있다.

다들 즐거우신가요? ^^
오늘은 바위가 비에 젖어 미끄러운 탓에 선등이 올핸 슬랩으로 직등하지 않고, 칸테로 등반중.


넘버투 등반을 지켜보고 계신 헤이즐럿님.

날듯이 시원스레 칸테를 등반중인 넘버투.

궂은 날씨탓에 선등 자체도 쉽지 않았을텐데, 후등조의 등반이 지연되면서 그 어느때보다 맘고생이 많았을 듯... 정말 수고했어~ 칭구야~~^^

헤이즐럿님 등반 중.

고도감이 심한데다 약간 까다로운 칸테의 바위턱. 작년엔 쉽게 올라서던 곳인데, 빗방울이 굵어지면서 너무 미끄러워 다들 약간씩 고전했다.

운무에 뒤덮힌 천화대 사선크랙 암봉.

오늘은 카메라 보고도 표정관리 안하는 걸 보니 오늘 등반이 만만치 않았던 듯...ㅎㅎ




아쉽지만, 비박지로 탈출해 조촐히 우중 산제를 지내면서 설악 산신령님께 올한해 무사산행을 빌고, 동료들 모두 함께 故 홍경의님과 故 송준호님을 
기리는 시간을 잠시 가졌다.

비는 좀처럼 그칠 줄 모른다.
늦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탈출로로 하산했다.


비에 젖어 미끄럽고, 험한 탈출로..


 
약간의 아쉬움이 남긴 했지만, 짙은 구름속에서 우리들만의 고도로 변해버린 흑범길 위에서 너무도 즐겁고, 의미있는 시간들이었다.

산행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안전, 특히나 이런 궂은 기상조건하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아무런 사고없이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로 되돌아오는 점이란 걸 생각하면 더더욱 행복했던 산행이었던 것 같다.
흑범 꼬리 찾기는 부득이하게 다음 과제로 미루어야 할 것 같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