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Ridge

[설악산] 흑범길, 맹수처럼 사납던.. ③ ♪

저산너머. 2010. 9. 2. 15:54

40m 슬랩 좌측의 칸테를 등반중이신 헤이즐럿님. 옅은 운무에 살짝 가려진 흑범의 암릉 풍경.. 한마디로 죽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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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흑범길 최대 난구간인 40m 슬랩구간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선등이 좌측 칸테로 오르지 않고, 슬랩을 직등하고 있군요.
"나는 어떡하라고~~♬♪ 우리는 어떡하라고~~♬♪"
슬랩 상단은 경사가 장난이 아닌데...


석주길 암릉 너머로 그동안 그 거대한 몸통을 숨기고 있던 1275봉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넘버투는 선등이 설치한 캠 회수를 위해 싫어도 어쩔 수 없이 직등. 이러다 또 분노 게이지가 수용치를 초과하는건 아닌지...ㅋ

선등이 설치해놓은 캠 회수후, 아슬아슬하게 칸테쪽으로 트래버스해 멋진 포즈로 등반중인 넘버투. 역시 넘버투 답습니다.

하늘을 향해 치솟은 자일.
고도감 제대로네요.
40m 슬랩은 소문만큼 어렵진 않더군요.
슬랩을 오르다 왼쪽 칸테로 붙는 지점에서 턱을 올라서기가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크게 어렵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서서히 운무가 짙어지고 있습니다. 운무속에 잠겨가는 암릉의 풍경이 그저 신비롭기만 하군요. 그런데, 저게 우리들을 지독한 시련으로 몰아넣는 서막일 줄이야...

마등령쪽도 운무에 잠겨가고 있고...

사선크랙이 위치한 암봉입니다.
거대하죠?
암봉 뒷편으로도 대칭형의 사선 크랙이 있는데, 그 사선 크랙을 등반 후 사진상으로 보이는 크랙의 상단 안부에서 하강하게 됩니다.
하강후 아래쪽으로 약간 내려오면 천화대 암릉에서 가장 넓은 비박터가 있구요.


40m 슬랩을 모두 무사히 등반한 후 클라이밍 다운 중.

사선크랙 암봉 아래쪽으로 흙이 드러난 비박지가 보이는군요. 삼면이 바위로 둘러싸여 아늑한 느낌을 주는 천혜의 비박지이죠.

드디어 마지막 피치인 3단 콤보 직벽 구간. 선등이 3단을 힘차게 오르고 있습니다.

헤이즐럿님이 3단중 하단을 오르고 계시네요.
개인적으로 이 구간이 좀 까다롭더군요.
1단과 3단은 그만하지만, 2단 직벽은 완력이 필요한 곳인데, 홀드와 스탠스가 서로 간격이 멀어 저같이 팔다리가 짧은 사람으로선
꽤 힘이 들 듯..
그리고 이곳에 도착할 정도되면 대부분 팔힘이 많이 빠진 상태일테고요.
저는 이곳을 오르기 전엔 못느꼈는데, 40m 슬랩 상단에서 사진 찍어준다고, 중간 중간 매달리듯 자세를 취하고 있다가 남아있던
팔힘이 빠져버린 듯합니다.


마지막 3단 등반 중. 이제 조금만 더 진행하면 왕관봉이 나오겠죠? 과연 나오려나요?ㅎㅎ

이제까지 힘들게 등반했던 흑범길을 되돌아 봅니다.
40m 슬랩이 바로 아래쪽에 보이고, 뒤쪽은 운무에 잠겨 희미하게 보이는군요.
이 사진이 흑범길 암릉위에서 찍은 마지막 사진입니다.
이후는 도저히 사진찍을만한 상황이 아니었죠.
세찬 폭우 때문에 카메라 꺼낼 수도 없었고, 괜히 꺼냈다가 번개란 넘이 자기도 찍어달라고 덤벼들 까봐 겁나서...




3단 직벽을 오른 뒤 조금만 더 진행하면 왕관봉이 나타날 것 같은데, 갑자기 길이 사라져버리더군요.
책자나 사이트의 정보로는 좌측으로 클라이밍 한후 우측으로 넘어서면 된다고 하는데, 앞쪽으론 긴 침니가
있긴한데, 통과하기엔 너무 좁은 침니..
그 오른쪽으로 비비고 올라설 만한 곳이 있긴 한데, 약간 애매해 보이는데다, 10m 앞도 구분이 힘들만큼
짙은 운무로 인해, 그 앞쪽 상황을 확인할 수가 없었고...
양쪽 모두 사람 지나간 흔적이 거의 눈에 띄지 않더군요.

그렇게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이건 뭐 숨을 공간도 없는, 암릉 끝 비좁은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있는데, 워낙 굵은 빗줄기라 피할 겨를마저
없더군요.
모두들 삽시간에 물에 빠진 생쥐꼴로...
잠시후 거센 바람마저 몰아치기 시작합니다.
비에 흠뻑 젖은 몸이라 금새 한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더니, 얼마나 추워지는지 온몸이 사시나무 떨듯 
떨리더군요.

비는 여전히 그칠 줄 모르고 있고, 여전히 길은 확인되지 않는 상황...
무언가 빨리 결단을 내려야하는, 긴박한 상황인데, 갑자기 머리위에서
"우르릉~~꽝~~!!"
이번엔 엄청난 굉음의 천둥번개까지...
정말 난리부르스도 아닙니다.
머리위에서 울려대는 천둥번개는 정말 공포 그 자체더군요.
피할 공간도 없는 좁은 암릉위인데다, 모두들 금속제 장비를 주렁주렁 걸치고 있는데...
 
문득,, 이러다 정말 조난 당하는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얼마전 읽은 "희박한 공기 속으로"라는 책의 조난 상황도 뇌리를 스치고...
결국 3단 직벽으로 하강한 후 비박지로 탈출하기로 급결정했습니다.
하강 순서를 기다리면서 다시 한참을 달달달 떨어야 했습니다.

암릉위에서 천둥번개에 그대로 노출되었을 땐 정말 이러다 사고나는거 아닌가 두려웠는데, 비박지로
무사히 탈출하고 나니, 일단 안도의 한숨이...
비박지의 나무 아래 옹기종기 모여 비를 피하며, 간단히 요기를 한 뒤 거친 계곡을 따라 탈출을 시작합니다.


비박지 아래 골짜기로 탈출중입니다.
예전에 천화대 비박 등반때 식수를 구하기위해 내려가 본적 있는 곳인데, 꽤 험했던 기억이 나더군요.

흑범길 등반 안내 책자나 사이트의 후기에도 모두 예외없이 이 골짜기는 낙석의 위험이 극히 높은 곳이라서, 날이 저물거나 비가 내렸을
때는 절대 들어서지 않는 것이 안전하다고 강조하고 있더군요.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탈출로가 험할까봐, 비에 젖어 미끄러운 바위사면에서 혹시 실족하는 멤버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 했는데, 지나친 기우였을까요?
모두들 너무 여유있게 암릉위에서 몸서리 쳐지던 기억에 웃고 떠들면서 잘만 내려오시더군요.
하긴, 다들 예전에 이런 길 전문이었던 분들이었고, 온갖 산전수전공중전우주전 다 겪으신 분들이니...
이미 많이 늦은 시각이었지만 그래두 한시름 덜었습니다.
참 다행입니다.


탈출로로 무사히 하산한 후, 설악골 입구 계류에 풍덩~~ 지독한 악천후와 온갖 시련 속에서도 무사히 흑범길 등반을 마친, 흑범보다 용맹한 6인의 대원입니다.

이하 보너스 샷.

비선대에서 바라본 장군봉과 적벽.

운무에 덮혀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는 천불동.

저항령계곡.

비에 젖은 천불동--- 흠뻑 젖은 몸으로 걸어 내려오면서 간절하게 드는 생각.. '막걸리 한사발에 내 속도 흠뻑 적셨으면.......'




예전에 석주길 등반때 찍은 흑범길 전경입니다. 흑범길 최상단에 왕관봉이 보이고, 그 아래쪽으로 40m 슬랩, 나이프 에지 구간도 구분되네요.

왕관봉 주변부 줌인. 3단 직벽에서 정말 조금만 더 진행하면 됐었는데...ㅡㅡ;;





참 사연 많았던 흑범길..
두고 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릿지 등반 5년치쯤의 경험을 하룻만에 압축 경험한 느낌..

휴~~~~~~~~~~~~~~

내가 다시 릿지 등반을 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지지~~ Baby Baby Baby~~♬♪  (소녀시대가 부릅니다. Gee~~~  ^______^)








긴 글과 사진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