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ekking

[운탄고도] 순백의 길을 가다 ①

저산너머. 2013. 1. 28. 23:30

 

 

[운탄고도 : 만항재~새비재]

 

[운탄고도 : 만항재~화절령 구간]

 

 

 

 

 

지리산 둘레길을 필두로 올레길, 마실길, 바우길... 길 길 길......

무슨무슨 트레킹 길이 참 많이도 생겼다.

그중 한번쯤 가보고 싶은 곳도 몇군데 있지만, 너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다보니 어디가 어딘지 모를 정도로...

 

그중 운탄고도는 비교적 근래 소개된 곳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번에 다녀오게 되었다.

 

 

 

 

- 운탄고도(運炭高道) : 석탄을 운반하던 높은 길.

 

이 길은 과거 대표적인 탄광지역이었던 정선의 함백/사북/고한, 영월의 상동/중동에 걸쳐있는 큰 산줄기인 두위봉(1,470m)에서

백운산(1,426m)으로 이어지는 산기슭의 석탄을 운반하던 폐광도로를 트레킹 루트로 전용한 길이다.

도상엔 탄광도로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그 중 한 가닥을 정비해 트레킹 루트로 개설한 듯하다.

만항재에서 새비재까지 지도서비스를 이용해 측정해보니 대략 25km가량 되는 거리.

 

이곳은 이름 그대로 고지대에 위치한 길이라서 겨울철 설경 감상에도 좋겠지만, 오래전 탄광촌의 애환이 서려있는 곳이라는

의미도 남다를 것 같아 더더욱 와보고 싶었던 곳이다.

 

운탄고도는 해발 1,100m 내외의 길로 고도라는 의미는 차마고도에서 빌려왔다고 하는데, 스케일로는 차마고도와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우리나라에선 이만한 산악형 트레킹 루트를 찾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실제 가봐야 알겠지만, 이곳에 다시 오기 쉽지 않을 것 같아 원래는 만항재에서 새비재까지 한번에 종주를 마칠 계획이었다.ㅎ

 

 

 

 

 

♣ 첫째날 : 화방재~만항재~하이원CC 부근

 

강원지역에 폭설이 내린 직후, 청량리에서 태백행 마지막 열차를 탔다.

중간에 원주쯤에서 옆자리에 아주머니 한 분이 앉으셨고, 가족 여행객 몇팀이 탔는데, 애들이 얼마나 시끄럽던지...ㅠ

잠을 청하려다 포기하고는 아주머니와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주머니는 사북에 사는 조카를 보러 가시는 길이라고 한다.

사북, 고한 지역 소식을 물으니 강원랜드 이후 지역 경제는 어느정도 살아나긴 했지만, 대신 숙박업소와 향락업소밖에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가 변했다고 한다.

오래전 함백산 다녀오다 들렀던 기억으론 그 고장 어딜가나 석탄더미들로 시커먼 산과 텅빈 마을, 흉흉한 폐가들의

기억밖에 없는데.....

 

태백역 앞 버스터미널에서 6:25분 화방재행 첫차를 타고, 화방재에서 내렸다.

함백산 쪽 등산로엔 베어놓은 낙엽송 나무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데다 눈이 쌓여있어 들머리를 찾아 살짝 해메야 했다.

 

 

 

화방재에서 만항재 오르는 도로.

 

 

갓내린 눈, 나뭇가지마다 달라붙은 설화가 장관이었다.

 

 

 

가파른 오르막이 몇군데 나타나는 수리봉까지는 아무도 오른 흔적이 없는 눈길을 혼자 러셀하며 오르느라 힘을 빼야했다.

체력도 소비되고, 시간도 그만큼 지체되고...

어차피 운탄고도의 출발점인 만항재가 목적인데, 편하게 도로를 따라 오르지 않은 게 후회된다.

다행히 수리봉 이후 만항재까지는 대체적으로 완만한 편.

 

수리봉에 도착해 설경을 감상하고 있으니 중년의 남녀 커플 한팀이 뒤따라 오고 있었다.

이후론 자연스레 그분과 앞서거니 뒷서거니 교대로 러셀하며 만항재까지 올랐다.

 

 

따끈따끈한(?) 눈터널.

 

 

잿빛 하늘이라 아쉽긴 하지만 하늘엔 눈발이 여전히 날리고 있고, 땅에는 깊은 눈이 쌓여있고, 주위 어디를 둘러봐도

나무 가지며 줄기며 달라붙은 상고대, 완전 순백의 세상이다.

 

 

 

낙엽송 숲 속에서 바라보는 설경은 정말 판타스틱했다.

 

 

 

 

 

 

 

만지면 복실복실 할 것 같은, 다운 자켓에 넣으면 따뜻할 것 같은 상고대.

 

 

만항재 정상부, 군사시설 부근의 낙엽송 숲 설경.

 

 

만항재로 내려가는 길.

 

 

 

 

 

만항재휴게소.

휴게소 오른편이 운탄고도 출발점.

 

 

만항재의 환상적인 눈터널.

 

 

 

 

만항재(해발 1,330m).

만항재는 우리나라에서 차로 오를 수 있는 포장도로의 고갯길 중 가장 높은 곳이자 정선, 영월, 태백의 땅이 갈리는 경계지대이다.

 

 

 

운탄고도의 출발점을 알리는 만항재의 이정표.

 

 

혜선사까지 이어지는 연등.

혜선사 갈림길까지는 이 연등이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만항재부터 줄곧 산릉 북사면으로 이어지던 길이 남사면으로 넘어가는 고갯마루의 너른 설원.

 

 

 

40~50여cm 가량 눈이 내린 듯한데, 다행히 2명의 흔적이 있어 그대로 따라 걸었다.

반대방향에서 온 발자국이라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폭설에다 예전에 내린 눈도 아직 굳지 않은 상태라 발자국을 조금만 

벗어나면 허벅지까지 빠져대니 어쩔 수가 없다.

 

 

혜선사 갈림길.

 

 

 

 

중단부 오른편으로 혜선사가 보인다.

 

 

꽉 막혔던 시계가 잠시 열리는 듯했다.

 

 

탄광인지 탄광촌의 흔적인지... 주요한 지형지물로 이용할 수 있는 이런 사태복원지가 중간중간 눈에 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순백의 길.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또 어떤 풍경이 펼쳐질까?

이런 길을 걸을 때마다 모퉁이를 돌아설 때 느껴지는 신비한 기대감이 참 좋다.

 

 

 

 

 

 

하이원CC 갈림길.

하이원CC 진입로는 오프 리밋츠.

 

이곳은 줄곧 도로수준의 폭으로 이어지던 길이 문득 단절되고, 좁은 등산로로 연결되는 운탄고도 전구간 중 유일한 구간인데,

아마도 원래의 탄광도로는 골프장쪽에 편입된 듯하다.

눈덮힌 골프장 풍경이 궁금해 그쪽으로 진행했다가 한차례 개고생했다.ㅎㅎㅎ

 

 

골프장 필드.

눈이 얼마나 깊고 설원이 길던지... 

깊은 곳은 허리 이상까지 빠지는데 저 곳을 통과하느라 한동안 고생 좀 했다.ㅋㅋ

 

 

고생고생후 필드를 빠져나와 다시 길을 잇는다.

이미 어둑어둑해진 시각.

하이원CC를 지나 좀더 진행하다 바람을 덜탈 만한 곳을 찾아 길바닥 위에 텐트를 친 후 힘들었던 하루 일정을 마쳤다.

바람은 끊임없이 불어대고, 눈도 밤새 오락가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