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두타·제주-한라

[동강 트레킹1] 점재~백운산~제장

저산너머. 2010. 12. 27. 16:20





강 트레킹.
천혜의 비경을 간직한 구비구비 푸른 동강변의 적막강산을 걷고, 강가의 하얀 모래톱에서 새벽을 맞는다는 것.
생각만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다.

동강 트레킹은 오래전부터 마음 한구석에 간직하고 있던, 언젠가는 이루고 싶은 꿈과도 같은 것이었다.
동강의 비경들이 서서히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하고, 동강댐 건설계획으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키던 당시부터
품었던 꿈인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야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정선 백운산 남서쪽엔 매의 움켜쥔 발가락처럼 복잡하게 동강이 굽이쳐 흐르는 지역이 있다.
물돌이 여섯개가 한 곳에 밀집해 있는, 지도로만 봐도 왠지 가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신비로운 지형.
굳이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아도 풍광이 수려할 것 같은데, 더구나 산좋고 물좋은 정선, 영월 땅이다.
이곳에서 시작해 영월의 어라연까지 구비구비 동강을 따라 트레킹하는 꿈을 꾸곤 했었다.
그런데, 한가지 결정적인 장애물..
강물에 뛰어들든 나룻배로 건너든 몇차례는 강을 건너야한다는 것..
이 때문에 맘과는 달리 선뜻 다가서기 쉽지 않았고, 관련 정보도 쉽게 구할 수 없던 때라 그대로 꿈을 접어야했다.
오랫동안 미완의 꿈으로.....

그러다 올해초 우연히 영월의 문산리, 정선의 연포 마을, 제장 마을에 다리가 놓여있다는 소식과 장성산~잣봉
등산로가 정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면서 잊혀졌던 꿈이 다시 꿈틀대기 시작했다.
(진작 정보를 접하게 되었다면 벌써 다녀왔을텐데...ㅡㅡ)




♣ 트레킹 첫째날
 
 점재 마을 ~ 백운산 ~ 칠족령 ~ 제장 마을(1박) ~
 소사 마을 ~ 연포 마을 ~ 칠족령 ~ 문희 마을(2박) ~
 마하리 마하교 입구 ~ 문산리 ~ 쌍쥐바위 전망대(3박) ~
 장성산 ~ 잣봉 ~ 어라연 ~ 거운리



하 12도, 13도...
올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몇일간 계속될 거라는 일기예보다.
이런 때 집 떠나면 그야말로 개고생인데, 과연 떠나도 될까?
더구나 혹한기 야영은 아직 경험한 적이 없는데...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꼭 해보고 싶었던 동강 트레킹이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또 언제 갈 수 있을 지 장담키 어려울 
것 같고...
에이~ 고생은 좀 하겠지만, 설마 얼어죽기야 하겠나.....
그래 과감하게 한 번 떠나보는 거다.
어차피 고생을 감수하고 가는 길, 언제 몸 편하자고 떠난 적이 있던가.....


미역에 내리자마자 싸늘하게 옷깃을 파고드는 바람이 정말 장난 아니다.
잠시 갈등상황이 재현되는 순간..

예미.
십여년만에 와보는 것 같은데, 이곳은 세월을 비껴가는 듯하다.
십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게 없어보인다.
좁은 산간 계곡 지형이라서 그런지 올때마다 다른 곳보다 왠지 더 을씨년스런 느낌..

점심식사를 위해 역앞의 식당을 찾는데, 원래도 작은 마을이긴 하지만 식당이 서너곳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중 한 곳은 문이 닫혀있고, 한군데는 아직 영업 준비가 안되었다고 한다.
정오가 다 된 시각인데...ㅠ
마지막 남은 식당에서 다행히 식사가 가능해 12시 발 운치리 점재행 버스 시간에 맞춰 천천히 식사를 마쳤다.

예미역 앞 주차장을 출발한 운치리행 미니버스는 유문동을 경유해 폐쇄된 줄 알았던 고성터널을 통과한다.
교행이 불가능한 좁은 터널이라서 버스 기사가 터널 건너편에 진입하는 차가 없는지 확인후 터널로 들어선다.
예전에 혼자서 고고산~완택산을 산행하던 때 인상이 깊어 언젠가 한번 터널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곳인데, 오늘도 시간 관계상 그대로 통과..
30분쯤 지나 운치리 점재나루터의 잠수교 위에서 하차했다.


늘 트레킹 루트는 점재~백운산~칠족령~제장 구간이다.
원래는 운치리 입구의 나리재를 출발해 소동 마을을 거쳐 제장 마을이나 연포 마을로 진입하는게 동강 트레킹의
정석이겠지만 백운산의 빼어난 조망을 그대로 지나치기가 아까워 코스를 약간 달리했다.

혼자다.
하차하는 사람도, 백운산 등산객도, 강건너 점재 마을에도 사람 그림자 하나 없다.
하긴 이 추운 날씨에 누가...ㅎㅎㅎ
점재교 위에서 바라보는, 푸른 동강 풍경과 건너편 백운산의 험한 산세가 벌써부터 마음속을 파고든다.
기온은 낮지만 너무도 청명한 하늘.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편으로 나타나는 긴 강변길을 따라 유유자적 홀로 걷기 시작한다.



예미발 운치리 점재행 버스는 백운산 산행 들머리인 점재교에 승객을 하차시킨 후 곧바로 회차했다.

백운산으로 향하는 강변길 오른편으로 보이는 마을 입구의 거목.
길은 강변길을 계속 따르다 우측으로 꺾이면서 이정표와 등산안내판이 나타나고, 특이하게 한 농가의 앞마당을 관통하게
되는데, 옛 점재 나루 뱃사공의 집이라고 한다.
밭둑길을 지난후 곧 본격적인 등산로로 접어들고, 가파른 길을 30여분 가량 오르면 백운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안부에 도착한다.


백운산에서 흘러내리는 뼝대가 보이기 시작한다.
"뼝대"는 이 지역 사투리로 길게 늘어선 바위 절벽을 뜻한다고...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능선 안부에서 강쪽으로 50여m 거리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동강.
바위틈 사이로 점점이 갈색의 회양목들이 눈에 띈다.
동강 주변 산들엔 다른 산에선 보기 힘든 회양목이 유난히 많다.


전망대에서는 나뭇가지에 가려 물돌이의 조망이 제대로 열리지 않는다.
전망대에서 약 7~8m 가량 내려서면 발아래로 푸른 강물이 굽이치는,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인 곳이 나타나는데,
위험하긴 하지만 이곳의 조망이 약간 더 좋다.
강한 역광빛에 동강의 푸른 수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예전에 산악잡지에 홍보를 많이 하던 모 래프팅 업체의 캠프도 보인다.




천길 낭떠리지 위에서 내려다본 동강의 환상적인 물빛.


동강의 푸른 강줄기와 나란히 흐르는 길.

전망대 안부를 출발해 백운산 정상으로 능선을 따르다 되돌아본 풍경.
전망대 안부에서 백운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은 코가 닿을 정도로 가파른 길에 오른편은 급한 절벽이고, 암릉이 적당히 섞인 구간이다.
리지 등반을 해야할 정도로 위험하지는 않지만, 얇고 평평한 판떼기처럼 쪼개지는 석회암질의 바위들의 날이 날카롭게 살아있고,
무른 암질의 면이 등산객의 발길에 닳고 닳아 미끄러운 곳이 많으므로 조심해야 할 듯...

백운산은 두번째인데, 예전엔 유명세만큼 좋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이번엔 혼자 여유있게 올라서 그런지 예전에 왜 그랬었나 싶을 정도로 그 느낌이 달랐다.





저 강변의 하얀 모래위에서 하룻밤 머물러도 좋을 것 같다.

이제 꽤 올라왔다.
물돌이의 끄트머리가 오른쪽 상단에 작게 조망된다.

가파르던 암릉길은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한동안 다소 완만해지다 정상 직전에서 한차례 다시 급한 오르막으로 바뀐다.
다행히 길지는 않아 10여분 정도 힘을 빼고나면 백운산 정상..


소동~제장~소사~연포 방향으로 이중삼중 굽이치는 동강의 물줄기.

아마도 정선 두위봉인 것 같다.

백운산 정상에선 함백산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찾지 못했다.
함백~태백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라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텐데...
정상에서 북동쪽으로 숲에 가려 조망이 터지지 않는 곳이 있는데, 혹시 그쪽에 숨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잎이 다 진
겨울철인데도 왜 안보이는 걸까?


백운산 정상에 나란히 서있는 돌탑 3기.

정상에서 200m 하산 지점의 삼거리에 위치한 이정표.
이 곳에서 백룡동굴 탐방 안내소가 있는 문희마을로 내려설 수도 있다.
이정표를 통과해 제장/칠족령 방향으로 완만한 길을 따르다보면 잠시후 가파른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이후 칠족령~제장 마을까지는 극심한 오르내림이 연속되는 고되고, 힘든 구간이다.


첫 암봉의 가파른 길을 내려선 후 칠족령까지는 왼편은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에 톱날같은 암봉이 도열해있는
뼝대 능선이 길게 이어진다.
좌측 상단부 물돌이 끄트머리에 희미하게 보이는 마을이 오늘 트레킹의 종착지인 제장 마을.


이곳엔 추락위험 표지판이 유난히 많다.
그만큼 가파르고 왼편은 낭떠러지가 연속되는 길이다.
추락위험 표지판은 추락위험이 높은 곳이니 조심하라는 메시지인 동시에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곳은 조망이 빼어난 곳이니
위험하긴 하지만 그냥 가지 말라는 메시지를 내포한 경우가 대부분...ㅎㅎ
물론 실제로도 극히 위험한 곳이므로 실족에 유의해야 한다.


산 너머로 이미 해가 떨어진 시각인데, 제장 마을까지는 아직도 갈길이 멀기만하다.
햇볕이 잘 들지 않는 음지쪽엔 잔설이 그대로였다.
아이젠을 하기엔 애매하게 쌓인 눈 때문에 미끄럽기도 했지만, 능선의 굴곡이 심한 곳이라서 이정표상의 거리보다는
훨씬 더 시간이 소요되었다.
가도 가도 끝이 나타나지 않는 듯한 느낌..


소동 마을 왼편의 물굽이. 직선으로 흐르던 물길이 토사가 쌓이면서 흐름이 바뀐 곳인 듯...

소동마을 물돌이.




족령에 도착했을 때 이미 어두컴컴해진 시각.
칠족령은 내일 연포 마을을 거쳐 다시 올라오게 될 것이므로 그대로 통과한다.
칠족령 직후 마지막 한차례의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제장 마을까지는 완만한 숲길이다.
어둠이 짙게 스며든 소나무 숲길.
길이 가끔씩 애매해지지만 제장 마을 까지는 지척이고, 랜턴을 꺼내기 귀찮아 감각에 의존한 채 길을 찾으며
내려갔다.
숲길이 끝나고.. 너른 길이 나타나고.. 농가 한두 채가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서니 큰 포물선을 그리며
제장교까지 이어지는 강변길이다.


식수가 거의 다 떨어졌다.
아니, 사실 식수를 거의 준비하지 않았었다.
예미에서 식수를 구입할 예정이었는데, 그만..ㅎㅎ
제장교를 건너기 전 마지막 집에서 식수를 구할 수 있을까해서 기웃거리는데, 개 넘이 얼마나 사납게 짖어대고,
그 중 한 넘은 끈도 풀린 듯하다.
뒤도 안돌아보고 내빼듯 돌아나와 계곡물을 이용할 생각으로 곧바로 제장교를 건넜다.

제장교를 건너 왼편길을 따르면 곧 취수장이 나오는데, 불은 환하게 켜져있지만 출입문은 굳게 잠겨있고...
그야말로 그림의 떡, 아니 그림의 물인? ㅡㅡ
취수장에서 오른쪽 계곡을 따라 이어진 눈덮힌 콘크리트 포장길을 터덜터덜 걸어올랐다.
분명 물이 흐를 듯한 규모의 계곡인데, 계곡 중간에 보이는 콘크리트 관로를 통해 취수장쪽으로 물을
빼돌리는 건지 추운 날씨탓에 꽁꽁 얼어붙기도 했지만, 완전히 마른 계곡이다.
그래도 어딘가엔 물이 흐르는 곳이 있겠지 하면서 한참을 걷다보니 문득 전방에 나타나는 삼거리..
헉~ 어느덧 예미~운치리 간 도로까지 올라온 것이다.


삼거리에서 오른편 첫집으로 들어가니 개만 시끄럽게 짖어댈 뿐 인기척이 전혀없다.
담배 간판이 있는 다음 집에서 맥주 캔 등을 구입하면서 식수를 구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 아예 지척인 나리재의 백운산 전망대로 갈까 생각했지만, 전망대에 하룻밤 보낼만한 사이트가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아 다시 제장교 쪽으로 맥주캔을 홀짝거리면서 천천히 되돌아 내려왔다.
취기가 살짝 오르니 환한 달빛을 받으며 인적없는 하얀 밤길을 홀로 걷는 정취가 그렇게 좋을 수 없다.

제장교를 건넌 후 백운산 쪽으로 너른 강변 자갈밭을 걷다가 자갈밭이 끝나고 뼝대가 시작되는
부근까지 계속 진행했다.
그런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굵은 자갈만 가득할 뿐 텐트 칠만한 백사장이 보이지 않아 강변둑으로 올라
임도 비슷한 길위에 자리를 잡았다.
텐트를 치고, 라면을 끓여 먹은 후 싸늘한 침낭속으로... 마이 춥다.......



예미 시내버스 운행 시간표. 예미에서 운치리 점재 마을로 가려면 운행 시간표 상의 운치회(운치2리 종점)행 버스편을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