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Walking

[설악산] 마등봉~설악동

저산너머. 2010. 9. 29. 21:32

이른 새벽, 마등봉에서 바라본 하늘이 너무 신비스러워서 담아봅니다. 대청봉 방면.

귀청 방면의 구름.
귀청 오른편 마루금 위로 새끼손톱만큼 삐죽삐죽 머리를 내민 가리봉과 주걱봉이 재미있네요.
자기들도 좀 봐달라고 떼쓰는 듯한...ㅎㅎ


안산 방면.

안산방면으로 비구름과 빗줄기가 몰려오는 듯하군요.

살아서 꿈틀꿈틀거리는 듯한 구름의 결이 느껴집니다.

속초 시내가 낮은 구름속에 휩싸여 있네요.

샘터에서 바라본 대청과 중청 풍경.

어디에서 바라봐도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운 듯한 세존봉.

등산로옆 조망바위에 올라 바라본 풍경.

천화대의 암릉들을 담아봅니다.
주능선이자 가장 긴 암릉인 천화대 본릉에서 흑범길, 염라길, 석주길이 갈라져 흘러 내립니다.
암봉마다 암릉마다 울긋불긋 점점이 등반팀이 붙어있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금강초롱. 이미 다 지고 이 녀석만 외롭게 피어있네요.

이쪽에서 바라보는 세존봉은 좀 두루뭉실하고 날카롭지 않군요. 세존봉의 등고선을 그린다면 아마 럭비공 모양일 듯...

좀더 아래쪽으로 내려오니 세존봉의 날카로운 기상이 다시 살아납니다.

유선대.
이제 거의 다 내려왔습니다.
천불동 갈림길까지 가파른 돌계단길만 내려가면 됩니다.
마등령부터 길게 산허리를 트래버스하던 등산로가 능선 날등으로 붙는 지점을 통과해 내려오다보면 유선대의 뒷모습이 보입니다.
뒷테는 작은 암봉처럼 보일 뿐이지만, 앞쪽에서보면 유선대는 장군봉 못지 않은 거대한 수직 암벽을 지닌 암봉입니다.


유선대의 옆모습.

금강굴 아래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적벽. 정상부에 클라이머들이 서 있네요.

화채릉과 천불동.

오늘도 어김없이 클라이머들이 적벽의 오버행을 등반중입니다.

드디어 유선대의 위용이 제대로 드러납니다. 장군봉 옆 돌계단 길을 내려올때 2피치에 붙어있던 등반팀이 4피치쯤을 등반중..

비선대 대피소 아랫쪽 다리에서 바라본 천화대 능선.
좌측부터 천화대 본릉의 노란벽, 사선크랙이 조망됩니다.
그 이후의 왕관봉과 범봉은 사선크랙 암봉에 가려 보이지 않네요.
천화대 오른쪽으로 흑범길이 3단 직벽, 칸테, 나이프 에지, 수직크랙, 4각형모양의 암벽으로 흘러내리는 모습이 확인되고,
염라길 초입 끝트머리가 흑범길과 살짝 중첩되고, 그 뒤편으로 석주길 하단부도 보입니다.
석주길 뒷편의 거대한 암봉은 1275봉.


소토왕골 일원엔 운무가 가득합니다.






등봉 정상.
새벽에 깔판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그동안 연일 기상이 양호한 편이었는데, 마지막날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시작되는군요.
저녁부터 불던 세찬 바람이 새벽엔 더욱더 거세지고...
'잠깐 지나가는 비이겠지'하고는 그냥 버티기 들어가려고 했는데, 빗줄기가 점점 거세지네요.

경계경보 발령입니다.
후다닥 일어나 온갖 잡주머니에 담긴, 젖으면 곤란한 물품들을 배낭안에 우겨 넣고, 배낭 커버를 씌워 배낭을
돌위에 얹어두고, 등산화를 배낭밑으로 밀어넣고는 침낭속으로 들어가 다시 버티기 한판 들어갑니다.
침낭위로 빗방울이 떨어지긴 하지만, 아직 젖어들 정도는 아닌 상황.
다행히 빗줄기가 곧바로 그쳐 다시 곤히 잠들어 있는데, 이번엔 좀더 강한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합니다.
더이상 맨침낭으론 버티기가 힘든 상황.

공습경보 발령입니다.
후다닥 일어나 매트리스와 침낭을 비닐 안으로 밀어넣습니다.
비닐이 터널 형태라서 발쪽에 돌을 얹고, 머릿쪽을 비가 들이치지 않도록 잘 오므리면 왠만한 비는 버틸만합니다.
그러나 비바람에 비닐 날리는 소리에 잠은 다 잤다고 봐야겠네요.
"후두두둑~~~ 후두두둑~~~"
비닐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심란한 마음으로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고, 그 사이에 비도 잦아들었고...
비닐 날리는 소리에 중간에 잠이 깨 다시 비닐 밖으로 탈출...

올 여름 워낙 비가 잦았던 탓에 집에서 산행 출발전까지도 텐트가 망설여지긴 했지만, 역시 이번에도 비박..
텐트로 인한 배낭 무게나 부피, 행동 반경의 제약 등의 이유도 있긴 하지만, 아직까진 설악을 좀더 원초적으로
느끼고, 호흡할 수 있는 비박이 더 좋은 느낌이네요.
제 에코*바 알파인 라이트Ⅱ는 구입후, 6~7년전쯤 소백 천동의 상쾌한 바람을 딱 한차례 쐰 뒤, 이후론 방구석에서 긴
세월을 내내 썩고 있는 중...ㅡㅡ



람 소리에 새벽잠이 깼습니니다.
새벽 하늘의 구름이 참 신비롭더군요.
마치 태풍 전후에나 볼 수 있는 머플러가 바람에 날리는 듯한 길다란 구름띠들.
아직 곤한 잠에 빠져있는 있는 속초 시내의 풍경이 참 신비롭습니다.
두터운 새벽 안개에 잠긴 채, 뿌옇게 산란되는 시내의 불빛 탓에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비현실적인 도시같이 느껴집니다.
고요한 꿈에 잠겨 있는 환상의 공중 도시, 천공의 성 라퓨타라고나...

부지런한 일단의 등산객들이 벌써 저항령 쪽에서 올라오고 있네요.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산행 루트를 물어봅니다.

어서 날이 밝아지고, 어둠이 가셔 주변 조망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안산쪽을 바라보니 흑선동 부근에만 이상하게
하얗고, 환한 빛이 돌더군요.
'와~ 정말 신비스런 풍경이네.' 하면서 바라보다가.....
"앗!!! 튀어야 산다~~ 저건 엄청난 비구름과 빗줄기다."
정신이 번쩍~~
황급히 침구를 정리하고는 배낭을 꾸립니다.
침낭을 채 말기도 전에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기 시작하네요..ㅡㅡ

비를 맞으며 배낭을 정리하고는 마등봉 뒷길로 내려서 일단 품이 넉넉한 나무 아래로 피신합니다.
한참을 기다리다 빗줄기가 잠시 수그러든 틈을 타 마등봉 뒷길을 따라 하산 시작..
이 길은 마등봉에서 비선대로 흘러내리는 능선을 잠시 따르다 암봉에 가로막힌 부분에서 마등령 등로 샘터가 있는
좁고 긴 골짜기로 떨어집니다.
정말 가파르고 긴 내리막길입니다.
워낙 가팔라서 조금만 발을 잘못 디뎌도 낙석과 낙상의 위험이 매우 높은 길..
좁고, 급준한 내리막이 워낙 길게 내리꽂는 길이라서 겨울엔 눈사태 가능성이 높을 것 같더군요.
지난 봄, 마등령의 눈사태가 혹시 이 부근에서 시작된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등령 등산로의 샘터.
최대한 조심조심 샘터로 내려서 마등령 정규루트에 무사히 도착..
중간중간 나타나는 조망바위들을 빠뜨릴 수 없죠.
비는 여전히 오락가락하는 날씨..
등로 주변 조망바위에 올라 비에 젖어 떨리는 몸을 추스리며 라면을 끓이고 있는데, 어느 노부부가 올라오십니다.

제가 라면 끓이는 모습을 보고는 부러우신지 자신들도 끓여먹고 싶은데, 이런 곳에서 라면 끓여도 되는지 좀 겁이
나시는 모양입니다.

연신 괜찮으니 끓여드시면서 몸 좀 녹이시라고 하니 그제서야 라면을 끓여 정말 맛있게 드십니다.
저 덕분에 라면 끓여 너무 맛있게 먹었고, 좋은 경험하게 되어 고맙다는 말씀과 함께...


"두두두두두~~~"
갑자기 천불동에 헬기 한대가 떴습니다.
노부부님 삽시간에 공습경보 모드로...
배낭을 숨기고, 두분이서 서로 이거 숨겨라 저거 숨겨라 소리치면서 난리통이시네요.
저는 뭐 그냥 볼테면 봐라 올테면 와라 무사 태평 모드...ㅋㅋ
절대 그럴 리 없겠지만...
오늘은 꼭두새벽부터 공습경보 발령이 잦네요.ㅎㅎㅎ

헬기는 설악골 안쪽에서 방향을 틀더니, 눈으로 확인되지는 않지만 장군봉 어름을 계속 선회비행하더군요.
'구조상황이구나'하는 생각...
나중에 내려오다보니 유선대 부근 등산로에 연막탄 통이 하나 나뒹굴고 있고, 여기저기 연막탄 액이 흘러 시뻘겋더군요.
사고자가 속한 팀이 그 때까지도 하산 전이라서 물어보니, 팀원중 한분이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일으켜 구조요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연막탄은 헬기보다 먼저 도착한 구조대원이 헬기에 사고 위치를 알리기 위해 터뜨렸었고...

장군봉 직전에서 시작되는 가파른 돌계단 길을 내려서다 금강굴 아래 조망대에 잠시 오른 뒤 다시 돌계단길을 내려와
비선대를 거쳐 설악동으로 안착하면서 4박 5일간의 산행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악동 구매표소 부근 식당에서 도토리묵에 장수 막걸리 한 통을 시켜 늦은 점심을 대신했습니다.
운무에 휩싸인 채 시시각각 변하는, 비에 젖어 촉촉한 노적과 권금성 일원의 풍경은 5일동안 이미 설악 깊은 내면의
매력에 흠씬 빠졌던 저에게 서비스하는 후막으로서는 너무도 과분할만큼 환상적이더군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한잔 두잔 막걸리 통은 비어가는데, 이건 풍경에 취하는건지, 술에 취하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네요.
제 테이블엔 어느새 막걸리 두 통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저의 정량은 분명 한 통이라서 절대 제가 시켰을 리가 없는데 말이죠.
아마도 쌍천을 흐르던 어느 눈치빠른 구름이란 넘이 제가 풍경에 취해 해롱해롱대고 있는 틈을 타 몰래 시켜 마신 
모양입니다.

누군가 함께 하지 못해 조금은 쓸쓸한 감이 들긴 했지만, 설악동의 풍경을 바라보며, 지난 5일간 혼자한
용아릉과, 쌍폭골~직백운, 곰골, 마등령의 풍경들을 더듬다보니 나른한 행복감과 더불어 빙그레 미소가 그려지고,
취기가 더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저는 정말 설악에 취했을 뿐, 절대 술에 취하진 않았습니다.
설악은 항상.. 그 풍경만으로 저를 충분히 취케 만드는 신비로운 존재이니까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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