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Walking

[설악산] 백담사

저산너머. 2010. 10. 20. 23:28
오늘은 다원의 다기들에 온통 마음을 빼앗겼네요.
한마디로 완전 필 꽂혔다는...ㅎㅎ
유리창에 비친 백담사의 당우들과 이제 막 단풍이 들기 시작하는 주변 산풍경들도 덤으로 딸려옵니다.


이번 산행도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무엇을 기원하시는걸까요? 참 오랜 시간 간절하게 불공을 드리시더군요.






♣ 산행 첫날, 백담사~큰귀때기골


설악의 단풍이 어느해보다도 예쁠 것 같다는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설악하면 껌벅 죽는 제가 그 어느 계절보다도 아름다운 가을 설악을 남의 얘기로 그냥 보낼 순 없지요.
일주일여의 일정으로 설악 구석구석을 다녀오기로 계획을 잡아봅니다.


동서울발 백담사행 12시 버스를 탔습니다.
버스는 서울춘천간 고속도로를 타다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한 뒤 2시 좀 넘긴 시각에 용대리에 도착하더군요.
세상 참 좋아졌다는 느낌이 절로 듭니다.

백담사 입구에도 김밥천국이 있더군요.
이제 설악에 들면 몇일간 제대로된 식사는 기대하기 어려우니 이곳에서 제육볶음을 시켜 배불리 먹어둡니다.
이 고을 특산인 황태해장국이나 순두부는 솔직히 맛을 모르겠고, 가격에 비해 부실한 것 같기만 하고...


셔틀버스에 몸을 실은 채 구비구비 백담계곡을 오릅니다.
셔틀을 타고 백담계곡을 따라 오르다보면 어느덧 속세를 벗어나 깊디 깊은 선계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시간적 여유가 있기에 오늘은 백담사를 두루 둘러보며 시간을 보낼 예정입니다.
오늘따라 다원에 마음이 가더군요.
창가에 진열된 다기들이 왜 그렇게 예뻐보이던지 온통 마음을 빼앗겼네요.


4시 좀 지난 시각.
서서히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수렴동 계곡을 홀로 허덕허덕 오릅니다.
길은 옛 백담대피소를 지나고, 영산담과 황장폭포를 스친 뒤, 흑선동 계곡, 길골을 비켜갑니다.
귀때기골로 접어들려니 근래 설악에 비가 많이 내렸는지 의외로 계곡에 수량이 넘쳐 계곡을 건널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더군요.
좀 더 아래쪽에서 일찌감치 건넜어야 했는데, 오가는 등산객들 때문에...
할 수 없이 귀때기골 합수점 위쪽의 소나무섬으로 난 옛길로 스며들어 도하를 시도합니다.
다행히 위쪽에 건널만한 지점이 있더군요.
계곡을 건넌 뒤 평탄하고, 넓은 숲지대를 관통해 하류쪽으로 한참을 내려갑니다.
귀때기골의 물소리가 서서히 가까와지고, 잠시후 귀때기골로 내려섰습니다.

낭랑한 물소리만 들릴 뿐 지극히 고요한, 서서히 어둑어둑해지는 귀때기골.
갓 떨어진 낙옆이 수북히 쌓인 숲길을 걸으며 사악사악 들려오는 발소리, 발에 닿는 푹신푹신한 촉감이 너무
좋네요.


귀때기골도 수해의 상흔이 느껴지더군요.
토사와 허연 돌무더기가 계곡 곳곳에 가득합니다.
작은귀때기골 합수점을 도착하니 합수점 위쪽으로 규모는 작지만 근사한 폭포가 하나 나타나네요.
카메라에 담기엔 너무 어두워서 눈에만 담습니다.

폭포 우측의 우회로를 이용한 뒤, 큰귀때기골을 따라 한참을 더 오르다 계곡가의 모래톱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등로방향으로 계곡 오른편에 평탄하고, 넓은 숲속에 군데군데 화전터 흔적이 있던데, 이곳이 혹시 축성암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진 시각인데다, 계곡 전체가 수해로 인해 돌더미 가득한 비슷비슷한 분위기라 현위치
파악이 쉽지 않더군요.


잠자리를 정리한 후 찌개를 끓여 막걸리 한잔 하려고 들떠 있는데, 이런이런...
버너가 말썽이네요.
노즐이 막힌건지 도무지 가스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 어떤 장비보다 중요한 게 버너인데...
앞으로 산행을 어떻게 해야할지 난감한 상황..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좀 불편하고, 배고플뿐 산행에 절대적으로 지장을 줄 만한 건 또 아니겠더군요.
빵도 어느 정도 있겠다, 라면은 굳이 끓이지 않아도 뱃속에 들어가면 결국 그게 그거고...
중간에 대피소에서 초코파이 몇개 보충하면 되고...
가을산엔 다래와 머루 등이 지천이니 설사 추워 죽을지언정 굶어죽을 일은 없겠죠?
정 안되면 원시적인 해결 방법도 있고...ㅎㅎㅎ

할 수 없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합니다.
분위기도 오히려 살고, 따뜻한 느낌이 참 좋더군요.
따스하고 아늑한 느낌에 누군가 함께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느낌이 들기도..

막걸리 한통을 다 비운 후 깊디 깊은 귀때기골에 홀로 누워있으니, 온갖 공상과 망상과 즐거운 상상이 끊이질
않네요.
밤하늘엔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 별들이 초롱초롱합니다.
얼마나 투명한지 마치 눈가루를 흩뿌려 놓은 듯 은하수가 하얗고, 선명하더군요.
산릉에 가려 보이진 않지만 달빛도 적당해서 홀로 있어도 위안이 되고...

앞으로 며칠간의 산행에 대한 기대감과 일말의 긴장감,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공상 탓에 늦은 시각까지 좀처럼 잠은
오지 않고..
이렇게 만추의 설악 첫날밤이 저물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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