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rak/Sorak_Walking

[설악산] 5박6일 설악 대종주 ①

저산너머. 2012. 10. 26. 19:38

 

■ 5박 6일 설악 대종주 | 설악 서남단 원통에서 동북단 고성 죽변봉-운봉산까지

 

 

 

 

 

건 아무래도 미친짓인 것 같다.

서울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전부터 구상은 하고 있었지만, 실제 실행할 날이 오리라 생각하지도 못했었고...

 

50여일간 티벳과 히말라야로 떠나면서 되뇌이던 '인생 뭐있나. 함 저질러보는거지...' 하던 상황이 반복된다.

 

"그러면 산엔 뭐가 있나?"

"음... 글쎄......"ㅋㅋㅋ

 

 

고 싶은 곳이 설악에 너무도 많지만 그간 꿈꾸고만 있었을 뿐,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하던 루트가 하나 있었다.

4~6일간의 일정이 소요되는 곳이라서 일단 시간을 잡기도 쉽지 않지만, 시간이 난다고 선뜻 엄두를 내기도 쉽지 않은,

그만큼 길고 힘든 루트이기 때문이다.

장기 산행이므로 기상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이 루트는 원통에서 시작해 가리능선의 끄트머리를 타고 가리능선 본릉에 오른뒤 한계령~서북릉~대청봉~공룡능선~

북주릉~미시령~신선봉~큰새이령~마산봉~죽변봉, 거기에 마침표로 운봉산까지 잇는 능선길이다.

지도서비스로 대략적인 거리를 측정해보니 도상 거리만 60km 가량.

능선의 굴곡까지 정밀하게 측정한다면 아마도 60km가 훨씬 넘는 거리일 것 같다.

 

아무튼 내 마음속 설악의 산계요, 설악의 양극으로 생각하고 있는 곳이다.

설악의 경계를 아무리 넓게 잡고, 본릉에서 이어지는 지릉까지 잇는다해도 더이상 길게 능선의 마루금을 이어나갈 수

없는 궁극의 설악 능선 종주 루트라 할 수 있겠다.

 

남설악에서 산행을 시작해 가리릉상의 해발 1,000여m의 고도에 일단 도달하고 나면 북설악 마산봉까지 몇몇 고개를

제외하고는 그 이상의 고도를 꾸준히 유지하고, 들머리인 원통의 가리릉 끝단부과 날머리인 고성 죽변봉 부근도 능선이

그 힘을 잃지 않고 장쾌하게 이어지는, 한마디로 설악 서남단과 동북단의 극과 극을 잇는 끝장 종주.

 

 

간만에 긴 능선 종주 산행을 하고 싶어 애초엔 태극종주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지만 태극 종주는 박산행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부지런히 걸으면 2박 3일이면 끝날 것 같고, 태극종주의 경우 

신선봉을 비롯한 북설악의 능선을 생략하게되는 아쉬움이 있고, 달마봉 이후론 능선의 힘이 급격히 떨어져 실질적인

종주는 목우재에서 끝나고, 이후론 야산 정도 수준으로 변해버린다는 점도 약간 아쉽고.....

 

 

 

 

♣ 산행 첫날

  

  

  원통터미널~원통교~장수샘~가리능선[732~821~945~1044.8~임도~961-1144~1229~1246~삼형제봉~느아우골 상단 안부]

  ▷ 가리능선[주걱봉~가리봉~필례령~천연보호구역 표시석]~자양천~도둑바위골

  ▷ 한계령~서북능선[한계령삼거리~끝청봉~중청봉]~중청대피소~소청봉~희운각~공룡능선[신선대~노인봉]

  ▷ 공룡능선[1275봉~나한봉~마등령]~북주능선[마등봉~저항봉~저항령~황철봉~미시령]~신선 상봉 샘터

  ▷ 신선 상봉~화암재~신선봉~큰새이령~마산~죽변봉

  ▷ 운봉산~학야리

 

 

 

<가리능선 서부>

 

 

 <대종주 들머리>

 

 

 

 

날머리는 일찌감치 죽변봉-운봉산으로 정해졌는데, 들머리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리릉 본릉 서단에서 원통쪽으로 흐르는 두세개의 능선과 내설악 휴게소로 이어지는 능선, 원통과 인제 사이 덕산리로

방면으로 이어지는 능선 중 어느 쪽이 좋을지 선택 상황에서 산행 정보를 구하기도 쉽지 않은 곳들이라 고민을 했다.

장기 산행에서 들머리를 잘못잡아 혹시라도 시작부터 길도 전혀 없는 능선을 잡목을 헤치고 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결국 교통의 편리함도 있지만, 속초, 양양과 더불어 설악 3대 관문도시인 원통 읍내에서 곧바로 시작하는게 나름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해서 원통교 부근으로 최종 방점..

 

들머리 정보가 없어 원래는 전날 오후에 도착해 능선 초입에서 전야를 보낼 예정이었지만, 출발전 급작스럽게 일이 생겨

막차로 원통에 도착해 원통 터미널 부근 여관에서 머문 뒤 새벽 5시 20분경 터미널을 출발했다.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깜깜한 새벽이다.

 

원통교를 건넌 뒤 삼거리에서(어두운 시각이라 확인이 어려워 안전하게 우회했지만, 삼거리 부근에서 장수샘터로 직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좌측 도로를 따라 300여m를 진행한 뒤 위성사진에서 봐두었던 우측 소로로 접어들어 끝까지

진행하니 장수샘터라는 샘이 나타나는데, 마침 그 우측편에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이제부터 그 등산로를 따르면 가리릉 본릉까지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을 것 같다.ㅎㅎㅎ

시작이 반이라더니 아마도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인 듯하다.

길이 없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라지면서 마음이 편해지고 5박 6일 종주에 대한 기대감이 한껏 밀려왔다.

 

 

헤드 랜턴을 켜고 안내판을 따른다.

참호와 교통호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급경사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정자 한채와 운동시설이 있는 공터가 나타났다.

인제군에서 등산로 정비와 함께 설치한 듯하다.

이 정자에서 갈골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것 같았다.

전날 도착해 이곳에서 비박했으면 참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서서히 날이 밝아오기 시작했다.

 

 

 

7:36 AM, 732봉 부근에서 찍은 첫 사진.

정자부터 완만한 급경사길이 끝나고, 벤치가 곳곳에 설치된 걷기좋은 완경사길이 잠시 이어지는가 싶더니 다시 급경사길이 시작되고,

한참후에 732봉에 도착했다.

중간에 벤치에서 오랫동안 휴식을 취하며 아침 식사를 했다.

 

 

오래된 묘지 한기도 나타나고...

 

 

인제군에서 정비해 놓은 등산로 정상을 알리는 821봉의 이정표.

소규모의 바위지대를 지나 능선을 계속 따라 올라가다보니 어느덧 821봉에 도착한다(8:04 AM).

이곳에서 정비된 등산로는 끝나고, 821봉 서쪽 지릉으로 하산로가 이어지는 듯하다.

 

 

821봉 정상에서 바라본 안산 조망.

지금까지는 숲에 가려 조망이 전혀 없었는데, 821봉 정상에 오르니 소규모의 바위가 있고, 조망이 약간 트였다.

 

 

 

821봉 정상에서 바라본 인제 읍내.

왼편으로 홍천 가리산 정상부의 독특한 산세가 인상적이다.

 

 

운해가 깔린 원통 읍내 뒷편으로 대암산이...

 

 

매봉산 조망.

 

 

945봉 방면에서 덕산교차로, 리빙스턴교 방향으로 이어지는 능선.

뒷편 산줄기는 한석산의 줄기이다.

 

 

갈골 좌측 능선.

뒷편 산줄기는 모란골~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릉 서단부.

 

 

가야할 945봉 방향.

 

 

나뭇가지 사이로 멀리 가리봉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821봉에서 바위를 타고 내려오니 큰 벙커가 하나 있었다.

정상적인 길은 821봉 정상을 통하지 않고, 진행방향의 우측 사면을 따라 이곳으로 내려오는 듯...

그리고 진행방향 왼편으로 군사용도로인지 임도인지 이곳까지 어어져 끝나는 길이 있었는데, 이 길은 아마도 1044.8봉과 961봉 사이

덕적리에서 올라오는 임도까지 연결되는 듯하다.

임도를 따를까하다 확실치 않아 능선으로 올랐다.

 

 

등산객들이 임도로 오가는지 이곳부터는 길이 희미했다.

 

 

 

 

 

가리릉 서단부의 여러 지릉중 가장 긴 줄기인 덕산교차로와 리빙스턴교 부근으로 떨어지는 지릉이 갈리는 945봉 부근의 벙커에 도착하고

나니 이제 본격적으로 능선 종주산행으로 접어든다는 느낌이 완연하게 들었다.

 

 

 

출처가 궁금한 폐깡통 무덤도 나타나고...

 

 

 1044.8봉.

 

 

되돌아본 945봉.

 

 

한석산 줄기.

임도를 따르기도 하고, 능선을 따르기도 했는데, 이런 사태계곡이 나타나면서 가끔씩 시야가 터지곤 했다.

 

 

능선과 나란히 흐르는 임도.

 

 

 

주로 능선 북사면으로 이어지던 임도가 남사면으로 넘어와 이어지는 곳.

이 곳 부근에서 남쪽으로 간간히 시야가 터지는 곳이 있다.

약간은 덥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전형적인 파란 가을 하늘이라 산행하기 딱 좋았다.

이 부근에서 간식을 먹으며 휴식시간을 가졌다.

 

 

한석산.

 

 

 

계속되는 임도.

 

 

인제 읍내를 줌인해본다.

 

 

야생화도 담아보고....

 

 

 

임도 너머로 가리봉이 바라다 보인다.

 

 

문득 더덕이 눈에 띄여 대여섯 뿌리 캤다.

오늘밤 안주로 딱일 것 같다.

찾아보면 꽤 있을 것 같았지만,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출발.

 

 

11:40 AM, 드디어 덕적리에서 올라와 가리능선을 넘어가는 임도 안부에 도착.

 

 

961봉을 오르다 되돌아본 임도.

 

 

 

 

 

961봉을 무심코 지나치고 진행하던 중 능선이 갈라져 왼편은 응골로 내려가는 능선인 것 같아 오른편 능선을 타고 100여m쯤

내려가다 문득 오른편으로 고개를 돌리니 높은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ㅎㅎㅎ

종주 산행 처음이자 마지막 알바..

얼른 961봉으로 복귀해 능선길을 따른다.

올해 단풍은 영 상태가 좋지 않은데, 알바구간에서 정말 제대로 물든 화려하기 그지없는 단풍나무 두 그루를 발견했다.

아마도 이 단풍 나무를 보려고 알바를 했던 듯....ㅎㅎㅎ

 

 

 

12:45 PM, 국립공원 경계지점 안부 부근.

멋진 자작나무 숲이 문득 눈앞에 펼쳐졌다.

자작나무가 이런 곳에서 자생할 리는 없을테고... 아마도 인공림인 듯하다.

 

 

 

 

 

 

1:49 PM, 1102봉 내리막길의 바위.

전형적인 육산에다 시야도 막혀있고, 뚜렷한 지형지물을 찾기 힘든 가리릉에서 이정표로 삼을 만한 인상적인 바위.

 

 

 

춤추는 나무.

 

 

조망이 좋을 것 같은 1144봉의 바위.

 

 

 

1007봉~1144봉 부근의 능선 북사면은 매우 완만한 지형이라 분지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망 한번 시원하게 펼쳐지는 법없이 가도 가도 끝없는 봉우리들.

그놈이 그놈같은 지루한 느낌에 이 부분을 통과하느라 무척이나 힘들었다.

전전날 용소골~잦은바위골 산행에서 누적된 피로까지 한꺼번에 밀려들면서 급기야 입술 주위에 단순포진이 생기기 시작...ㅎㅎㅎ

 

 

 

장승고개로 내려가는 길이 갈라지는 1229봉을 지나면서 길이 이전보다 약간 뚜렷해진다.

 

 

1184봉 부근에서 되돌아본 1229(1226.5)봉.

1184봉 정상 직전 안가리산으로 등산로가 한줄기 갈라지면서 1246봉으로 향하는 길은 한결 더 뚜렷해졌다.

 

 

1246봉에서 바라본 삼형제봉과 주걱봉, 가리봉, 귀때기청봉.

 

4:15 PM, 드디어 1246봉에 도착했다.

이곳부터는 예전에 와본 적 있는 익숙한 길이라 안심이 된다.

날이 저물어가는 시각인데, 서서히 구름까지 몰려들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비예보가 있었는데.....

 

1246봉은 조망이 환상적인 곳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가리릉의 단풍빛도 곱고...

 

 

 

삼형제봉과 귀때기청봉.

 

 

안산 방면 조망.

 

 

지난번 다녀온 갱기골.

갱기폭포는 각도상 가려져 보이지 않고, 갱기폭 좌벽만 눈에 들어온다.

 

 

1246봉에서 내려다본 안가리산 마을.

 

 

 

 

 흔적.

 

 

지나온 능선.

1184, 1229, 1144봉이 차례로 눈에 들어온다.

 

 

 

 

 

 

매우 가파른 1246봉 하산로를 내려와 의외로 힘을 빼게 되는 삼형제봉 우회로를 거쳐 느아우골 상단 안부에 도착하니 6시

가까이 다 된 어둑어둑한 시각이다.

애초 목표가 가리봉이라서 야간산행도 언뜻 생각했지만, 비소식에다 바람마저 심상치 않아 더이상의 진행을 멈추었다. 

 

무엇보다도 식수가 우선이니 식수를 구하기 위해 느아우골로 내려가야 한다.

갈수기라서 그런지 400~500m 가량 내려가서야 물줄기가 나타났다.

헤드랜턴을 밝히며 다시 느아우골 상단 안부로 되돌아온 뒤 타프를 치고 하룻밤 머물 준비를 했다.

서서히 불기 시작하는 바람에다 비소식이 있었기에 최대한 낮게 타프를 쳤다.

 

오징어짬뽕 라면 끓여먹고, 더덕 안주에 가볍게 반주하고...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그렇게 설악 대종주 첫날밤이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