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두타·제주-한라

[한라산] 어리목~영실~돈내코 ①

저산너머. 2013. 5. 11. 13:44

 

 

 

 

 

♣ 어리목~사제비동산~만세동산~윗세오름 대피소~영실~윗세오름 대피소~평궤대피소~돈내코

 

남한 최고봉인 한라산의 등산로는 높이나 규모에 비해 아주 단순하다.

한라산 서사면의 어리목과 영실 코스, 동·북사면의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 여기에 수년전 개방된 남사면의 돈내코 코스를 더해

총 5개 코스가 전부이다.

천왕사 석굴암 코스(비정규 구간인 석굴암~고상돈 케룬은 제외)는 엄밀히 말해 등산로라기보다는 사찰 탐방로에 가깝고, 

어승생악 코스는 여느 오름 탐방로와 크게 다르지 않으니 둘다 완성된 형태의 정상적인 등산로라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아마도 순상화산의 특성상 육지의 산들과 달리 능선이나 계곡이 제대로 발달되지 않아 산세가 단순한 탓이리라.

 

 

오늘은 어리목, 영실, 돈내코 코스를 하루에 끝내는 일정.

어리목을 출발해 윗세오름 대피소에 도착한 뒤 영실로 내려갔다가 다시 윗세오름으로 올라와 돈내코로 하산할 예정이다.

한라산 등산로 대부분이 다른 산에 비해 훨씬 길다는 걸 감안하면 하루에 소화하기엔 다소 빡빡한 일정이긴 하지만, 영실 코스는

도상 3km 가량으로 비교적 짧은 편이니 이른 아침부터 서두른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예전엔 이런 고민할 필요없이 영실~어리목 코스 또는 그 역방향이 유일했는데, 돈내코 코스가 추가되면서 윗세오름 대피소를

경유하는 코스가 홀수가 되어버린 탓에 코스 구성이 좀 애매해졌다.

 

 

전날 오후 가볍게 중문 쉬리의 언덕을 둘러보고는 중문에서 1100도로행 버스 편으로 천왕사 입구에 내려 하룻밤 머물렀었다.

1100도로를 경유하는 중문발 첫차는 중문에서 곧바로 출발하는 버스편이 없고, 제주시외터미널발 첫차가 중문에 도착한 뒤

회차하는 버스가 중문발 첫차이기 때문에 첫차 시간이 너무 늦어 전날밤을 굳이 중문에서 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제주시내까지 가서 숙박업소를 이용하게 되면 지난 이틀동안 쌓인 피로도를 감안하면 첫차는 절대 어림없고,

점심때쯤 되서나 숙소를 나올 것 같고...ㅎㅎ

아무튼 중문에서 제주행 막차를 타고 천왕사 입구에서 하차한 뒤 위성 사진을 통해 미리 점찍어 두었던 사이트로 갔는데,

헉~ 목장 안쪽이다.ㅋㅋㅋ

목장이 새로 생긴 건지...

 

잠시 주변을 정찰해 어렵지 않게 대체 사이트를 찾았다.

세속적인 편견(?)을 약간만 버린다면 아주 아늑하고, 편했던 곳.

 

원래 계획으론 석굴암을 둘러보고 내려온 후 그동안 어떤 곳일지 궁금했었던 아흔아홉골의 조망이 괜찮을 것 같은 노루생이

(노루손이) 오름까지 오를 예정이었는데, 일정이 지연되 둘다 포기한 아쉬움에 오름 들머리만이라도 확인해 두려 그쪽으로 

진행해봤다.

 

들머리에 도착하니 노루생이라는 이름답게 멀리서 노루 한마리가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화들짝 놀라 숲속으로 줄행랑친다.

다시 1100도로 쪽으로 나와 무슨 사찰 비슷한 쪽으로 잠시 걸어보니 도로 건너편으로 아흔아홉골의 윤곽이 대충 눈에 들어왔다.

 

 

 

 

전날 천왕사 입구 부근 목장에서...

 

 

아흔아홉골.

 

 

어리목행 새벽 첫차를 기다리며...

버스는 예정보다 10여분 늦게 도착했다.

 

 

어리목 입구에서 하차해 1km가량 도로를 따라 오르면 어리목 등산로 입구가 나온다.

 

 

 

어리목 등산로 들머리에서 바라본 한라산 정상쪽.

한라산 정상부엔 구름이 가득했다.

 

한라산은 10여년전 겨울에만 4개 코스를 돌아봤는데, 당시 심한 악천후 상황이라서 영실, 어리목 코스에선 조망을 거의 보지

못했고, 성판악 코스의 한라산 정상부에서만 조망이 아주 잠깐 열렸었다.

오늘도 혹시 조망 한번 제대로 못보고 이대로 내려가는 건 아닌지...ㅡㅡ;;

 

7:30 분경 산행을 시작했다.

 

 

어승생악.

 

 

들머리에서 완만한 숲길을 따라 500여m 가량 걸으니 어리목계곡을 건너는 다리가 나타난다.

문득 다리를 건너지 않고, 그대로 계곡을 따라 오르고 싶다는 생각이...ㅎㅎ

 

 

이후 거기가 거기같은, 별다른 변화가 없는 한라산 특유의 지루한 숲길이 오랜시간 계속된다.

 

길을 따라오르는데, 등산로상에 하얀 점들이 간간이 보이기 시작한다.

저게 뭘까?

첨엔 설마 했는데, 오를수록 점점더 숫자가 많아져 혹시나하고 손으로 만져보니 녹는다...

헉~~ 눈...

새벽에 싸락눈이 내렸었나보다.

 

 

사제비 동산.

지루한 숲길을 벗어나 사제비 동산에 도착하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열린다.

 

 

사제비 동산.

 

 

수량이 풍부한 사제비 약수.

 

한겨울처럼 추운 날씨였다.

사제비샘 도착 직전 바람이 거세지더니 갑자기 싸락눈이 억수같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4월 중순에 눈이라니...

 

 

한라산 정상부를 뒤덮고 있는 갈색 지대가 보통의 초원지대인 줄 알았는데, 모두 빽빽한 산죽 군락이다.

덕분에 한라산에선 뭔가를 하기가 그리 쉽지 않을 것 같다.ㅎㅎ

 

 

 

다른 산에선 쉽게 구경할 수 없는, 한라산에서만 볼 수 있는 누런 산죽군락으로 뒤덮힌 드넓은 고원 풍경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서서히 상고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만세동산 조망대에 잠시 올랐다.

 

 

조망대에서 내려다본 제주시 방면.

 

 

어승생악 방면.

 

 

한라산 정상부는 여전히 구름에 뒤덮혀 있었다.

눈은 그쳤지만, 대신 세찬 강풍이 몰아쳐 매우 추웠다.

 

 

 

주변 풍경에 그대로 녹아든 듯한, 구비구비 이어지는 목조데크길이 참 멋지다.

한라산 정상부의 구름이 서서히 걷히면서 드디어 서북벽이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오늘은 파란 하늘아래 눈부신 한라산의 풍경을 볼 수 있을까?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한라산 정상부의 서북벽을 바라보며 걷는 멋진 길.

 

 

 

 

 

한적하던 평일 한라산은 수학여행온 학생들이 밀려들면서 주말을 방불케할만큼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젊은피들은 역시 다르다.

난 윈드스토퍼 안에 두어벌 더 껴입고, 장갑까지 껴도 추워 죽겠는데, 저들은 츄리닝 차림에 맨손으로도 전혀 추운 기색없이

씩씩하게 잘만 걷는다.

겉으론 츄리하게 보여도 혹시 저 츄리닝이 고어텍스 같은 특수 재질로 만들어진건 아닐까?ㅎㅎㅎ 

 

 

어디를 둘러봐도 너른 갈색 초원을 이루는 이국적인 풍광.

 

 

오름샘.

속이 얼얼할 만큼 시원했다.

 

 

고원 풍경도 약간씩 지루해지기 시작할 무렵 윗세오름 대피소가 드디어 눈앞에 나타난다.

 

 

 

 

 

대피소의 컵라면을 빼먹을 순 없지.

끓여먹는 라면은 좋아해도 컵라면은 좋아하지 않아 평소엔 거의 먹지 않는데, 이곳에서 먹는 컵라면은 정말 별미중의

별이였다.

고지대인 점을 고려하면 가격도 착한 편이고...

윗세오름 대피소 안에서 따뜻한 컵라면 국물로 몸을 녹이면서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행복감마저 밀려든다.

대피소 안으로 수학 여행 온 학생들이 본격적으로 밀려들면서 조금만 더 늦었어도 줄이 너무 길어져 하마터면 컵라면

맛을 못 볼 뻔했었다.

 

 

 

 

대피소에서 오랜시간 휴식을 취한 후 영실로 향하면서 하늘이 점점더 열리는 듯한 느낌에 기분이 한껏 업되었다.

 

 

철쭉 사진으로 너무도 유명한 선작지왓.

 

 

족은윗세오름 정상의 조망대에도 올라 시원하게 펼쳐지는 주변 조망을 한껏 감상했다.

근데, 이 전망대의 바람은 정말 엄청났다.

 

 

 

 

 

윗세오름 뒤로 한라산 정상.

 

 

 

 

다소 황량해 보이는 저 갈색의 산록이 울긋불긋 천상의 화원으로 뒤바뀌는, 철쭉꽃 만발한 계절에 오면 얼마나 좋을까?

담에 다시 한라산에 온다면 꼭 그때 와보고 싶다.